[자연과학]‘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

  • 입력 2005년 3월 11일 16시 54분


인간과 비슷한 모성 본능을 보이는 침팬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은 자연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인간과 비슷한 모성 본능을 보이는 침팬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은 자연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인간 본성의 근원을 찾아서/에드워드 윌슨 지음·최재천 김길원 옮김/204쪽·1만2000원·바다출판사

‘인간, 얼마나 위대한 걸작인가. 이성은 고귀하고 능력은 무한하고 행동은 천사와 같고 이해(理解)는 신과 같다.’

햄릿에 나오는 ‘인간 예찬’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비교하는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이라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듯하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김길원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인간 본성이 구석기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유전자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출판사가 원제 ‘In Search of Nature’(1996년) 대신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란 제목을 붙인 것도 그런 저자의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서로 비교해 ‘뱀에 대한 공포’나 ‘나눔’ 등이 인간만의 특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논증해 간다.

뱀에 대한 공포는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현상이다. 뉴요커나 호주의 원주민이 갖는 뱀의 이미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뱀(독사)은 남극 대륙을 제외한 지구 모든 지역에 퍼져 있고, 그것을 경계해야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인간 유전자가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연구소의 침팬지는 뱀을 경험한 적이 없는데도 나이가 들수록 뱀에 대한 공포를 더 느낀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인간도 그와 유사한 발달 과정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나눔의 미학도 인간만의 특질은 아니다. 지구상에 알려진 9500여 종의 개미 중 상당수가 액체를 현명하게 나눠 먹는 방식을 진화시켜 왔다. 특히 나눔은 사회성 곤충들의 핵심적 특성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타주의(利他主義)나 자기희생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선험적 특질이라는 것도 오해임을 들춰낸다. 울새 등 작은 새들은 매가 접근하면 가늘고 특이한 소리를 낸다. 소리를 내지 않아야 생존 가능성이 높은데도 다른 개체에게 위험을 알리는 행위는 이타적이다. 꿀벌 중 일벌이 침입자를 향해 자살특공대 식으로 돌격하는 것도 이타적 희생의 일면이다.

이렇게 보면 동물과는 다른, 인간 본성을 추출하고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문화의 진화’라는 개념으로 인간의 특질을 다시 추스른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사회생물학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독자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진화는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共進化)를 통해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인간 본성의 기원이 수렵채집시대의 유전자에 있다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 현대인의 오만이 빚어내고 있는 환경문제 등 지구적 재앙에 대한 경고다. 인간의 지능이 대단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 조상이 진화해 온 자연환경의 울타리를 벗어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75년부터 1999년까지 쓴 에세이를 모은 것으로 저자의 주장 외에 동물 행동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생생한 묘사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효과적 글쓰기를 위해 가정교사를 두고 공부한 저자의 대중적 글쓰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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