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데이인 14일 저녁 7시. “꼭 보여줄게 있다”는 남자친구 이규복(24)씨의 말에 영문도 모르고 서울 광화문 네거리까지 이끌려온 김진영(24)씨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가수 유리상자의 감미로운 노래 ‘사랑해도 될까요’가 흐르는 가운데 동아닷컴 대형 전광판에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예쁜 사진과 함께 규복씨의 깜찍한 사랑 메세지가 뜨고 있었던 것.
두 사람은 의경-순경으로 만났다. 규복씨가 모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근무하던 봄에 순경 발령을 앞둔 진영씨가 실습 차 오게 된 것. 규복씨는 “솔직히 그때 진영이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말도 한번 제대로 못 붙이고 보내고 말았다고.
하늘이 도운 것일까? 몇 달 후 진영씨의 청초한 모습을 잊지 못해 끙끙 앓던 규복씨 눈 앞에 진영씨가 기적처럼 다시 나타났다. 같은 경찰서에 순경으로 오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남들의 눈을 피해가며 사랑하던 두 사람이 화이트 데이를 맞아 마침내 광화문 네거리에서 두사람의 관계를 공개했다.
내친 김에 규복씨는 “결혼하고 싶다”는 속내를 비치기도 했다. 눈시울을 붉히던 진영씨는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많이 사랑할게요”라고 수줍게 대답했다.
화이트 데이를 맞아 동아닷컴은 동아일보 광화문 대형전광판을 통해 연인의 사진과 함께 사랑 메시지를 띄워주는 행사를 벌였다.
광화문 전광판 '화이트데이 이벤트' 연인들 환호-감동 물결
아기자기하고 감동적인 많은 사연들이 접수됐지만 그 중 최종 30 커플이 이번 행사의 주인공이 되는 행운을 잡았다.
전광판에는 “베이비에게 주고픈 말은..오직 하나 뿐!!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는 재미난 메시지가 나온다. SBS 코미디프로 ‘웃찾사’의 인기 개그맨 리마리오의 ‘느끼 개그’를 흉내낸 듯 하다.
경상도 남자 인근씨는 “최근 집안에 안 좋은 일이 많아서 여자친구에게 소홀했는데 이번 기회에 좀 만회해 보고자 이벤트에 응모했다”고 말한다.
‘평소에 잘 못해주나 보다’는 기자의 질문에 여자친구 지은씨는 “아니예요, 평소에도 너~~무 잘해줘요”라고 얼른 답한다.
아예 전광판으로 공개 청혼을 하는 남자 친구도 있었다.
대학원생 이성수(30)씨는 “대학 연합동아리(UAAA-전국대학생천문연합회)에서 만나 7년 사귀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프로포즈했다”면서 “내년에 결혼할 생각(나 혼자 생각)인데 이번 이벤트 덕 좀 볼 것 같다. 크크”라고 신난 듯 웃었다.
전광판에는 ‘근애야~ 사랑해^^ 내년에는 결혼해서 같이 재미있게 살자~’라는 문구가 뜨고 있었다.
여자친구 김근애(29)씨의 대답은 어떨까.
근애씨는 “이런 이벤트를 준비할 줄 전혀 몰랐다. 감동 먹었다. 점수를 딸 의도였다면 대 성공”이라고 추켜세운 뒤 “그렇다고 내년 결혼을 결심 한 것은 아니니 김칫국은 적당히 마시길~!”이라고 새침하게 잘라 말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디카와 폰카를 치켜든 여러 커플들이 추위도 잊은 채 밝은 표정으로 자신들의 사연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전광판에 나온 연인들을 부러움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다 남자친구에게 핀잔을 주는 여성도 있었다.
처음 전광판에 음악과 함께 메시지가 뜨자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 하던 행인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연 하나하나를 유심하게 읽으며 관심을 보였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전광판을 한참이나 지켜본 한 젊은 여성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 진다. 지금 싱글인데 나도 언젠가는 따듯한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부럽고 샘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7시 10분 “미정아!! 우리가 처음 맞이하는 화이트데이! 사랑해”라는 문상수씨의 사연으로 시작된 사랑고백은 “나는 '너를'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 복댕이~ 사랑해~”라는 정현호씨의 메세지를 끝으로 7시 45분께 막을 내렸다.
화이트데이 광화문의 저녁하늘은 달콤한 사랑의 메시지로 핑크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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