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한 번 밟아 보고 싶었던 국토의 막내, 동해의 한 점 섬 독도.
백두산 천지가 한중수교로 여행객의 발아래 놓인 후 백두산처럼 긴 바람을 안고 살아 온 곳은 오직 독도뿐이다.
그런 독도가 우리에게 문을 연다니 사람들이 설레는 것은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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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만 있었던 ‘금지된 섬’.
여기에 발 디뎌 본 사람,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제 곧 우리도 독도에 상륙해 국토의 동쪽 끝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감동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 기막힌 여행을 앞두고 식물 탐사를 위해 여섯 차례나 독도에 상륙, 장기간 체류하며 섬의 겉과 속을 면밀히 관찰해 온 ‘들꽃박사’ 김태정(60·사진) 한국야생화연구소장으로부터 독도 여행기를 들어 본다. 》
외로움. ‘독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온통 어둠에 휩싸인 망망대해에 불빛이라고는 오직 등대의 랜턴, 소리라고는 파도와 바람의 파열음뿐인 이곳. 달빛 곱고 별빛 쏟아지는 아름다운 밤도 있지만 섬을 날려버릴 듯, 바다를 집어삼킬 듯 미친 듯이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의 밤이 일상이다. 그래서 나는 독도 지킴이를 존경한다. 그곳에 주둔하는 경찰관과 전경대원, 등대지기 여러분이다.
독도의 정경은 자연이 베푼 은혜 그대로다. 온 섬이 괭이갈매기의 둥지와 알로 뒤덮이는 5월의 독도를 한번 상상해 보라. 갈매기는 지천으로 피는 개밀(잡초 종류)잎을 끊어다 보금자리를 튼다. 그리고 알 두세 개 놓고 품는다. 등대로 오르는 계단이고 흙길가고 상관하지 않는다. 섬에서 사람은 더 이상 경계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과 자연이 두루 어울리는 곳, 독도가 거기다.
동도와 서도, 지척의 두 섬 사이에는 얕은 바다가 놓여 있다. 나는 그 두 섬을 작은 보트로 오가며 두루 살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위험한 곳이 독도다. 파도가 그렇고 바람이 그렇다. 가파른 바위로 이뤄진 섬에는 늘 추락의 위험이 도사린다. 특히 상단의 바위는 잘 부서져 미끄럽기까지 하다.
길이라고 해야 동도의 선착장(바지선)과 등대 및 숙소(섬 상단)를 잇는 흙길과 계단, 그리고 전경대원의 수색로뿐. 야생화는 그 길도 마다하지 않고 핀다. 바위로 이뤄진 섬, 평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곳이다 보니 흙만 보이면 뿌리를 내린다. 섬바디 섬기린초 섬초롱꽃 섬노루기…. 누가 섬이 아니라 할까봐 식물에는 이름마다 ‘섬’자가 붙어 있다. 모두가 울릉도 특산식물이다. 그 모진 바람 속에서도 이렇듯 꽃피우고 열매 맺으니 독도의 야생화는 그 자체가 끈질긴 인내의 민족성 그대로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는 오묘한 것. 얼마나 날쌘지 잡으려고 해도 도저히 잡을 수 없었던 토끼가 사라졌다. 아니 도태된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생존에 실패한 것이다. 최근 다시 모습을 드러낸 왕호장과 토종 민들레는 먹이사슬이 자연 상태로 회복함에 따라 회생한 토박이 식물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다. 답은 분명하다. 독도를 개방해도 독도의 자연만은 철저히 지켜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도는 없다’는 후대의 비난이 우리 몫이 된다.
나는 독도의 등대지기로부터 늘 부러움 섞인 말을 들었다. 내가 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멋진 해돋이와 해넘이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워낙 바람 거세고 해무가 잦아 아주 또렷한 해맞이는 일년에 사나흘 정도라니. 그 해돋이와 해넘이는 정말로 감동스러웠다. 한반도의 동쪽 땅 끝이라는 점 때문이었을까.
독도가 여행객에게도 열린다니 반가우면서도 걱정이다. 허구한 날 뭇사람 발아래서 신음할 작은 섬의 여린 자연이 걱정돼서다. 현재 독도는 완벽한 자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을 지키고 후대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은 우리의 임무다. 부디 자연을 지키고 보호하는 의식이 더욱 살아나도록 독도가 이코투어리즘(Ecology Tourism·생태여행)의 모범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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