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협에 격랑이 일 때마다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재일동포가 아닐까 싶다. 한국과 일본 어느 쪽도 비난하거나 편들기 힘든 그들이다. 그래서 망언, 독도, 교과서 같은 말이 자주 나오면 그들은 우울해진다.
어제 한 재일동포가 한국에 왔다. 피아니스트 최선애(崔善愛·45) 씨. 지문 날인 거부 투쟁의 한가운데에 섰던 여성이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1981년 외국인등록증을 바꿀 때마다 요구받는 지문 찍기를 거부했다. 차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가는 혹독했다. 1986년 8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는 ‘재입국 허가’ 조차 받지 못했다. 울면서 출국했고, 출국과 동시에 특별영주권도 잃었다.
그는 눈물을 훔치고 외로운 투쟁에 나섰다. 지문 날인 거부 재판에서는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지만 재입국 불허 취소 소송과 영주권 확인 소송을 일으켜 ‘일본국’을 법정으로 끌어냈다. 결과는 참담한 패소였다. 하지만 “차별은 거부한다. 그러나 일본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그의 변함없는 호소가 국회를 움직였다. 외국인등록법이 개정되면서 최 씨만을 위한 부칙이 신설됐다. 그는 2000년 4월 특별영주권을 회복했다.
글로 줄이면 짧지만 그가 특별영주권을 되찾기까지는 무려 19년이 걸렸다. 21살의 처녀가 중년이 됐다. 더구나 잃었던 것을 되찾는 데 불과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마흔 살이 돼서 손에 넣은 영주 허가의 도장을 보며, 9세 때부터 갖고 있던 이전의 영주권과는 다른 무게를 느꼈다.” ‘자존심’의 무게였으리라.
그가 한국에 온 것은 한 편의 연극을 보기 위해서다. 24, 25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초연되는 ‘선택’이란 연극이다. 그에게는 아주 특별한 연극이다. 주인공의 모델이 바로 본인이기 때문이다. 법정을 울렸던 그의 솔직하고 담백한 진술이 대사로 바뀌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연극은 일본인이 쓰고, 일본인이 연출했다. 배우도 모두 일본인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비록 멀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겠다’는 최 씨의 ‘선택’이 매우 ‘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극단이 재일동포를, 그것도 살아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선택’도 매우 ‘극적’이다. 한국을 첫 공연 장소로 결정한 것은 한일 간에 화해를 위한 작은 다리를 놓아 보자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의도는 상당히 빛이 바랜 느낌이다. 서울 하늘에 독도와 역사교과서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이 연극이 썰렁하게 끝나서는 안 될 것 같다. 문화공연마저 정치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라면, 두 나라의 앞날은 정말 어둡다.
최 씨는 “한국을 등에 지고, 일본 속에서 커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등에 지고 살아왔다는 한국이 그에게 해 준 것은 없다. 그렇다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게 재일동포의 삶이다. 극장이 차고 넘쳤으면 한다. 그의 길고도 외로웠던 ‘선택’에 뒤늦게나마 손뼉을 쳐 줄 관객들로.
심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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