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편지/안경환]영원한 이별이 어디 있으랴

  • 입력 2005년 3월 18일 16시 48분


정이현 작가, 마지막 편지입니다. 지난해 초가을에 시작한 우리들의 공개편지를 거두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펜팔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었습니다. 여러 차례 ‘마지막’ 편지를 받고 절망했고, 몇 번인가 예의를 갖춘 절교편지를 쓰면서 비겁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침묵으로 이별을 대신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살다보니 영원한 이별이란 없더군요. 비록 더 이상 만나지는 못해도 결코 마지막이 아니더군요. 가슴속 어딘가에 완전 연소되지 못한 아련한 그리움과 회한의 재가 되어 남아 있더군요. 무릇 크고 작은 모든 인연은 무덤에 안고 가는 것인가 봅니다.

세상을 향해 던진 우리들의 사연은 남녀와 세대의 거리를 좁혀 보자는 의도였지만,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독자들은 ‘거리’를 잴 만한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편리하게도 기억하고 싶은 역사만 내세웁니다. 그러나 역사는 한 사람이나 집단의 기억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나는 마지막 편지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렵니다. 한 여배우의 자살을 여성 전체의 사회적 고뇌로 확대시키는 것은 이제는 진부한 비약인 것 같습니다. 실비아 플러스,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서양 여성은 물론 윤심덕 김명순 황윤석 전혜린으로 이어지는 이 땅의 선구적 여류 지식인의 선례들은 자살의 미학과 사회적 고뇌를 논할 충분한 소재가 되었지요. 시대가 그랬으니까요.

얼마 전 이 지방 출신으로 나와도 약간의 친분이 있었던 중국계 작가 아이리스 창(Iris Chang)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난징의 능욕(The Rape of Nanking·1997년)’이란 문제작으로 역사 속으로 틈입한 그녀는 역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지레 물러섰다는 멋있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원인은 이은주처럼 우울증이었답니다. 우울증이란 정신의 결함 못지않게 뇌라는 육체의 결함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육체적 장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대해졌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결함이 빚은 정신의 장애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곳까지 보내준 ‘푸른 혼’(김원일), ‘사람, 풍경’(김형경), ‘비밀과 거짓말’(은희경), 세 권의 책은 외국어를 상용하는 공적 영역에서 나만이 누리는 사적 특권으로 삼겠습니다. 그 속에 또박또박 적은 정이현의 수묵(水墨)은 챙겨두렵니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그녀가 웃으면 주변공기도 따라 웃는다.’ 어느 선배 작가의 구절로 고마움을 대신합니다. 건강하세요. 그래서 시류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 큰 작가가 되세요. 세월의 이완에 약간 눅진해진 내 뼛속 깊이 파고드는 이국의 봄 햇살을 안으며 마지막 전파를 보냅니다. 안녕, 정이현, 그리고 안녕, 독자 여러분.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미국 샌타클래라대 로스쿨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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