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

  • 입력 2005년 3월 18일 17시 00분


◇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복거일 지음/384쪽·9700원·이룸

소설가 시인 문화비평가 자유주의이론가로 활동해 온 복거일(59) 씨가 10대 청소년을 위한 판타지 소설을 내놓았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실패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장편 ‘비명을 찾아서’로 대체(代替) 역사소설이라는 새 장르를 선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에서도 왕성한 실험을 보인다.

이 책은 열다섯 살의 소녀 마법사 민이가 마법성을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과 동물, 나무들을 통해 바라본 세상 이야기다. 2001년 장편소설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에 액자소설 형식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독립된 장편으로 다시 만들어 낸 작품이다.

마법사 부부의 딸인 민이는 ‘견습 딱지’를 떼기 위해 마법성으로 수련여행을 떠난다. 길에서 그는 강아지 당나귀 닭 오리와 어울리고 여러 사람을 만난다. 청년 고고학자 오리손도 만난다. 마법성에 도착한 그는 전쟁터로 나가 오리손과 함께 큰 공을 세운다. 오리손의 청혼을 받아들여 사랑의 결실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이 사라진 것을 깨닫는 순간 민이는 진짜 마법사가 된다.

작가 비평가 이론가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온 복거일 씨가 최근 10대 청소년을 위한 판타지 소설을 내놓으면서 새로운 영역을 파고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여기에서 마법의 첫걸음은 동물과 식물의 ‘참 이름’을 알아내는 데 있다. 닭의 참 이름은 ‘볏이 곱고 목청이 좋은 새’이고, 오동나무의 참 이름은 ‘잎새가 넓어 시원한 그늘을 사람들 머리 위에 드리워 주고 꽃이 고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는 나무’다. 참 이름을 불러주면 나무들은 마음을 열고 자신의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저자는 “어릴 적엔 부지런히 책을 사주던 부모들도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이제 교과서만 보라고 다그친다”며 “인생에서 가장 어중간하고 어설픈 시기인 열두 살에서 열일곱 살 사이의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 방식 등이 ‘해리포터’나 ‘오즈의 마법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게 흠이다.

복 씨는 “청소년 소설은 흥미 있는 주제를 찾고 그 수준에 맞는 글을 써야 하는 등 기술적 어려움이 많다”면서 “이 책을 어른들이 보면 어려울지 모르지만 오히려 청소년들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타잔’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공상과학소설(SF) 작가 에드거 버로스의 화성 소설에 영향을 받아 천문학을 공부했고, 우주 개발의 동력은 SF 작가들의 공이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라며 제대로 된 청소년 환상소설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전소설 ‘보이지 않는 손’(가제)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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