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마 나쓰키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미국령 괌의 해변에서 마린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던 프로 윈드서퍼였다. 일본 윈드서핑 대회를 여러 번 석권했고, 윈드서핑 월드컵에 8년간 나가 많은 상을 탔다. 윈드서핑 잡지 ‘하이 윈드’에 활달한 에세이들을 실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2002년 6월 간암 선고를 받았다. 이어 간 이식 수술도 용이하지 않다는 통보까지 받자 극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빠졌다. 1년 후 글쓰기를 통해 서서히 우울증에서 빠져나왔지만 지난해 5월 “생명이 앞으로 6개월 남았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는 그간 써 온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의 마무리를 서둘렀다. 바로 이 작품 ‘천국에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면’이다.
소설 속에는 병원 환자들을 대신해 가족이나 연인에게 편지를 대필해 주는 ‘편지 가게 헤븐(heaven)’이 나온다. 인턴 때 여자 어린이의 배를 수술하다가 과호흡으로 인한 패닉 상태를 겪은 뒤 수술을 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가 된 준이치가 이곳을 운영한다. 그가 맞이하는 이들은 “항상 죽음을 앞두고 몸속에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증 암 환자들이다. 소아암에 걸렸지만 다른 환자들을 열심히 돕는 초등학생 아이코, 안과 의사이면서도 아내의 눈에 암이 도졌다는 것을 몰랐다며 자학하는 히데키, 암 때문에 실직한 이타메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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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의 바람둥이 윈드서퍼 슈지도 그중 하나다. 그는 술 담배도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인생의 절반도 살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 둘을 놓아 두고 “올해 여름 무역풍이 불 무렵” 세상을 떠날 것이라 생각하니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상태에서 그동안 아내를 속였던 일들을 고스란히 편지에 써 보낸다. 아내가 천생연분처럼 생각됐다기보다 일본계 미국인이었던 아내와 결혼하면 그린카드(미국 시민권)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매달렸다는 말도 털어놓는다. 바람을 피웠던 사실도 고백한다.
이지마가 지켜본 병원 모습들도 세세하게 담겨 있다. 불안으로 쉽게 잠을 자지 못하는 남자 환자들이 수면제를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 폐암을 앓고 있으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고집 센 노인 환자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려 내는 분위기가 무겁지만은 않다. ‘대머리 독수리 작전’ ‘언더그라운드 작전’ 등 비밀리에 접근해 환자들이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통을 ‘취재’하는 의사의 모습은 유머러스하다.
이지마는 올해 2월 28일 아이들 넷을 남기고 숨졌다. 지난해 일본에서 나온 이 책이 아마존저팬의 베스트셀러 소설 1위가 된 뒤라 그의 삶과 장례식, 후일담은 후지 TV에서 방송됐다. 불치의 병 앞에서도 새로운 서핑에 도전하는 슈지가 소설 쓰기에 나선 이지마 본인의 모습과 자꾸 겹쳐 보이는 작품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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