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음악의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 입력 2005년 3월 22일 19시 04분


20세기 음악 중에서도 칼 오르프(1895∼1982·독일)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는 예외적인 성공의 이력서를 가지고 있다. 팀파니의 강타로 시작되는 첫 부분의 합창곡 ‘오 포르투나(운명의 여신이여)’는 오늘날 한국의 쇼 프로그램에서도 중대한 결단을 상징하는 배경음악으로 즐겨 쓰인다. 그런데 이 음악이 ‘나치가 사랑한 음악’이었다면 놀랄 만한 일일까.

이 작품은 13세기 독일 수도사와 학생들의 운문에 곡을 붙인 합창곡이다. 1937년 처음 발표됐을 때 나치 당국자들은 ‘왜 독일어보다 라틴어가 많으냐’ ‘흑인음악 같다’며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러나 곧 나치는 이 곡이 가진 힘에 주목했다. ‘선택된 민족’의 전통 생활을 묘사하고 있고, 그들이 배척한 쇤베르크 풍의 ‘타락한’ 현대음악과 달리 힘 있는 리듬과 간명한 화음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는 오르프에게 국가훈장을 수여했고, 유태인 음악가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대신할 새 ‘한여름 밤의 꿈’ 작곡을 의뢰하기도 했다.

나치가 패망한 뒤 오르프가 궁지에 몰렸던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는 “나는 나치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뮌헨의 반전단체 ‘백장미’와 연결돼 있던 탓에 전쟁 말기에는 산으로 숨어 다녀야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최근 캐나다의 ‘글로브 앤드 메일’ 지 음악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에버렛그린은 ‘카르미나 부라나’의 토론토 공연을 두고 쓴 기고문에서 이렇게 결론 내렸다. “오르프는 나치 집권 이전에 정립한 자신의 창작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 나치 시절에 그의 작품이 자주 공연된 것은 그의 죄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1879∼1936)도 파시스트들이 그의 작품을 짝사랑한 탓에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그는 반(反) 파시스트 입장 때문에 곤경에 처한 지휘자 토스카니니를 돕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고대 로마의 영광을 찬양한 그의 ‘로마 3부작’을 파시스트들이 소리 높여 찬양한 탓에 전쟁 직후 그의 작품들이 한때 사장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두 작곡가에게 닥친 공통의 운명은 어쩌면 그들의 음악이 격정적이고 선동적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시대에나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힘 있는 자들의 선동에 이용될 위험에 노출돼온 존재, 그것이 바로 예술가의 운명이 아니던가.

마침 다가오는 29일은 오르프의 사망 23주기가 되는 날이다. 생명의 환희를 찬양하는 ‘카르미나 부라나’의 1부 ‘봄’을 들으며 ‘봄날의 선동’에 한번 취해 볼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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