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나라를 부자 나라로 만들고 싶습니까?”
어떤 지도자나 대답은 한결같이 “예”일 것이다. 그러나 잠깐, 부국(富國)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히기 위해서는 네 개의 열쇠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시대도, 어떤 문명권도, 어떤 국가도 이 네 가지 열쇠가 없이는 부로 이르는 기나긴 역정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과연 어떤 열쇠일까. 저자는 ‘자유로운 재산권’ ‘과학적 합리주의’ ‘활력 있는 자본시장’ ‘빠르고 효율적인 통신과 수송’으로 이를 요약한다.
● 자유롭게 생각하고, 돈벌고, 투자했다
1700년 네덜란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위인 영국의 두 배에 가까웠다.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도 이 나라가 가장 먼저 부의 결승점에 안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나라는 반(反)스페인 투쟁의 결과로 1648년 독립했다. 전제정치에 넌덜머리가 난 새 나라는 ‘신구교와 유대교까지를 포함한 신앙의 자유’라는 놀라운 신개념을 도입했다. 양심과 신념을 표현하는 데 눈치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 결과 레벤후크의 현미경을 비롯한 혁신적 발명과 사상의 도입이 잇따랐다. 이것이 ‘과학적 합리주의’다.
네덜란드의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얕은 바다에 제방을 건설해 광대한 새 토지가 생기자 중세 장원의 의무에서 벗어난 자유농민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부당한 착취나 간섭 없이 노동의 과실을 즐겼다. ‘자유로운 재산권’이 보장된 것이다. 또 간척사업을 하려면 풍차 건설 등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고, 이를 조달하기 위해 낮은 이자율이 정착됐다. 사회가 안정되어 대부금의 회수도 잘 돼 ‘활력 있는 자본시장’이 형성됐다.
운하를 통한 수운(水運)은 육상 운송보다 훨씬 더 빠르고 비용도 덜 먹혀 효율적이었다.
네덜란드에 이어 영국의 번영이 뒤따랐다. 네덜란드 출신인 윌리엄 3세와 의회가 시민의 권리를 보장했고, 농지 사유화 운동인 인클로저 운동은 근대적 재산권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정치의 안정은 금리를 내려가게 해 대규모 자본축적이 가능해졌다. 변화의 꽃은 증기기관과 조면기(繰綿機)의 발명이 이끌어낸 산업혁명의 폭발이었다.
● 역사는 패배자를 남긴다
네 가지 열쇠를 통해 보면 ‘자기 시대의 네덜란드’가 되지 못한 나라들의 실패요인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18세기 이후 프랑스는 왜 영국에 뒤처졌을까. 정부가 각종 산업분야의 독점권을 판매해 재정을 충당하려 한 까닭에 자유로운 재산권의 행사가 저해됐다. 통행세는 자유로운 수송을 방해했다. 면화에 관한 각종 규정을 위반했다며 1만6000여 명을 처형할 정도로 신기술에도 관용적이지 못했다.
500년 전 이슬람문화권은 궁핍하고 후진적인 유럽 국가들을 위협하는 활력 있고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역사의 주도권을 빼앗겼을까. 가장 큰 이유는 코란에 명시된 ‘이자 소득 금지’ 조항 때문이었다. 금융업이 없다시피 하니 자본의 축적이 불가능했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오스만제국은 유럽을 배우려 결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답이 틀렸다. 서구의 무기와 군사제도, 공장까지 수입했지만 ‘네 가지 열쇠’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20세기 후반부의 세계를 장식한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대결도 처음부터 결말이 뻔했다. 공산사회는 자유로운 사상과 사고의 발현을 억압했고 자본의 집중을 이루지 못했으며, 결정적으로 자유로운 재산권 행사를 통한 사회의 활력을 얻지 못했다.
● 2만 달러 시대? 우리는…
한국은 일찍이 빈국에서 동아시아의 ‘호랑이’로 탈바꿈했다. 저자는 동아시아의 성장이 ‘공개된 시장, 법치, 안전한 재산권이 확보된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오늘날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을 목표로 땀 흘리고 있는 우리는 지금 네 가지 열쇠를 가졌는가.
저자는 ‘재산권’의 열쇠를 ‘독점체제로 인한 인센티브의 박탈이 없고, 독점가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자의적으로 빼앗기지 않는 것’으로 폭넓게 해석한다. ‘과학적 합리주의’의 열쇠란 현대사회에서 포퓰리즘 또는 다른 어떤 정치적 선동에도 현혹되지 않는 지적 건강성을 의미한다. 자본의 원활한 조달은 ‘기업들이 합리적 경영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선진기술로 무장한 일본, 광대한 인구와 시장을 무기로 솟구쳐 오르는 중국. 두 거인 사이에 놓인 우리 앞에 ‘2만 달러 시대로 가는 문’은 모든 빗장을 풀고 활짝 열릴 것인가.
원제는 ‘The Birth of Plenty’(2005년).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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