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한 연립주택 2층, 복도 맨 끝집에 30대 중반의 엄마 게이코와 열두 살 아들 아키라(야기라 유야)가 세를 얻어 들어온다. 여행용 트렁크 두 개에서는 각각 일곱 살 꼬마 시게루와 네 살 여자아이 유키가 나오고 저녁이 되자 열 살 먹은 여동생 교코가 몰래 들어온다.
아버지가 모두 다른 이 아이들은 아키라 말고는 집에만 있어야 한다. 아이가 많은 것이 알려지면 또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키라는 편의점에서 장을 봐 밥을 짓고 가계부를 쓴다. 교코는 빨래를 한다. 철없는 엄마는 밤늦게 술을 마시며 남자들을 만난다. “나는 행복하면 안 돼?”라며 투정 부리던 엄마는 어느 날 편지 한 장과 얼마의 돈을 남기고 집을 나간다.
영화의 남은 이야기는 어찌 보면 뻔하다. 아키라와 세 아이들이 어떻게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느냐를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뻔한 내용이 가슴을 울린다.
카메라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황폐해져가는 이들 삶의 조그마한 부분을 세밀히 따라간다. 전기 물 가스 등의 공급 중단을 알리는 용지, 길어지는 아이들의 머리와 땟국물 흐르는 얼굴. 24색 크레용은 손톱만한 크레용 대여섯 조각으로 줄어들고, 아키라의 헤진 운동화는 어느새 슬리퍼가 대신하며 시게루의 발에는 때가 켜켜이 쌓인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아무도 울지 않는다. 1970년대에 비슷한 내용을 담은 한국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넘쳐났던 눈물은 없다. 천진난만한 것일까. 막내 유키가 죽었을 때마저 그렇다. 유키를 장사지낸 아키라의 흙 묻은 손이 어둠 속에서 잠시 떨릴 뿐이다.
코레에다 히로가즈 감독은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다. 영화는 슬프지만 카타르시스는 없다. 이 아이들은 결코 우리의 양심을 위해 대속(代贖)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로 당신들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저 현실의 ‘아키라 네 아이들’을 모른 체하며 사는 우리들 마음을 툭 건드릴 뿐이다.
아키라 역을 맡은 야기라 유야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탔다. 4월 1일 개봉. 전체 관람 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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