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하고 억눌렸던 시절, 동아일보의 만화는 아홉 냥짜리 값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세기 한국 사회의 신문매체가 이른바 언론의 전범(典範) 노릇을 했다면, 동아일보는 그 한가운데를 관통한 주인공이었으며, 그 지면 정수리에는 늘상 ‘동아 만화’의 꼿꼿한 권위가 깃발처럼 펄럭였다.
동아 만화의 막힘없는 붓끝은 1920년 4월 1일자 창간호 만평에서부터 예견됐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의 조선총독부를 코앞에 두고 “우리는 단군의 건국이념을 받들고자 한다”는 기치를 높이 들었다. 촌철살인의 풍자로 불의한 권력을 비판하고 일그러진 세태를 질타해 온 동아 만화는 누르면 누를수록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동아 만화는 숱한 양식의 신문만화를 등장시켰다. 정치만평 형식의 한 칸 만화와 네 칸 시사만화, 그리고 어린이 학습만화에서 성인용 연재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다. 동아 만화의 맥은 미국에서 신문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창간 멤버로 활약했던 천리구 김동성에서 출발해 문필가 출신의 최영수와 한국화가 출신의 이상범으로 이어졌다.
광복 이후에는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동아희평’의 백인수, ‘나대로 선생’의 이홍우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지난 85년간 동아만화의 역사는 불꽃으로 살았던 한국 신문만화의 정사(正史)라고 할 수 있다.
손 상 익 만화평론가·언론학박사 www.sonsangik.com
○창간호 민족지를 선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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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 선언한 창간호 만평
(1920년 4월 1일)=‘동아일보’란 글자가 박힌 수건을 허리에 두른 어린이가 까치발로 곧추 서서 손을 위로 뻗어 ‘단군유지(檀君遺趾)’라는 휘호가 쓰인 액자를 잡으려 하고 있다. 갓 태어난 동아일보가 단군의 뜻을 이어 배달민족의 독립을 이루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담긴 창간 만평이다. 창간 초기 하와이 만국기자대회와 워싱턴 군축회의를 취재하기도 했던 김동성 기자의 작품.
○서슬 퍼럴 때 독립을 외치다
▶1924년 신년호 ‘독립만세’ 특집 만화(1924년 1월 1일)=‘과거 61년간 조선내(朝鮮內)의 중대사건’은 13개를 연대기 형식으로 담고 있다. 1864년 대원군 집정을 시작으로 병인양요, 신미양요, 을미년 명성황후 피살, 경술국치 등 아픈 근대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감격스러운 마지막 장면은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노도와 같이 울려 퍼진 기미년 3월 1일 “독립 만세”의 함성. 서슬 퍼렇던 일제의 검열하에서 어떻게 이런 만화를 게재할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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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총칼에 맞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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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을 휘두르는 ‘문화경찰’(1924년 1월 17일)=일본경찰을 상징하는 모자에 선혈이 낭자한 일본도가 꽂혀 있다. 숭숭 뚫린 구멍에서는 소총 화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문화정책을 표방한 일제가 여전히 조선민족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현실을 고발하면서 “이것이 문화경찰이냐”고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만평이다.
○민족의 아픔을 고발하고 설움을 함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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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으로 넘치는 한반도(1924년 6월 24일)=“우리 인민의 살 틈은 어디요?”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체가 일본군으로 뒤덮여 있다. 마음 편히 숨쉴 곳도 없는 식민지 민중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이다. 당시 동아 만화는 필화를 우려해 만화가의 이름을 쓰지 않거나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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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일본 나막신) 신은 표독한 일본 개(1925년 8월 5일)=한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조선)가 막대기로 ‘게다’를 신은 개(일본)를 내리치는 모습을 그렸다. 주인은 “씬(쓴) 것! 단 것 다 훔쳐 먹으면서도 왜 이렇게 게으르면서 밤낮 앙앙대”라고 역정을 내며 개로 상징되는 일제의 탐욕을 통렬하게 꾸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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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에게 물어뜯기는 조선청년 (1925년 5월 7일)=조선 청년의 머리를 ‘시대고민’이라는 악마가 물어뜯고 있다. 검은 악마의 팔과 다리에는 ‘압박(壓迫)’ ‘기근(飢饉)’이라는 글자가 써 있고, 조선 청년의 입(언론)에는 재갈이 물려 있다. 이 만화는 조선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게재금지 처분을 당했다.
○꺾여도 부러지지 않았다
▶계엄사령부의 ‘불가’(不可) 판정(1980년 11월 26일)=‘구 여당’을 ‘구린내 나는 사람들’로 묘사한 이홍우의 ‘나대로 선생’. 계엄사령부는 이 만화 원고에 대해 사전검열 결과 불가 판정을 내리고, 다른 만화로 대체하도록 했다. ‘나대로 선생’은 1980년 11월 12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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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村鐵殺人
▶필화 부른 ‘경무대 똥통’ 만화 (1958년 1월 23일)=‘경무대(지금의 청와대)라면 똥 푸는 사람도 귀하신 몸?’ 이 만화로 김성환은 국내 시사만화가로는 처음으로 만화 때문에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고바우 영감’은 1954년 2월 1일부터 1980년 9월 1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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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영만의 ‘식객’ 신문만화 새 바람
▶허영만의 만화칼럼 ‘식객’=2002년 9월 2일 등장한 ‘식객’은 정치풍자 위주의 종합일간지 신문만화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대중만화 형식의 문화칼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식객’은 종합일간지 신문만화의 새로운 영역 확장 시도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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