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노루귀부터 11월의 골고사리까지 광릉 숲이 안고 사는 소중한 식물 100종의 생태가 선명하고 아름다운 세밀화들에 담겨 있다. 잔바람에 살랑이는 줄기의 솜털까지 그려 낸 이 세밀화들을 보노라면 풀과 나무의 생명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세밀화들을 그려 낸 국립수목원 세밀화실의 화가 이승현(29) 권순남(30) 공혜진(28) 씨는 매일 광릉 숲으로 출근해 식물들을 찾아다니며 수채화로 정밀하게 그려 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이들은 “식물 표본은 색이 변하고, 사진은 초점잡힌 부분만 잘 드러내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세밀화는 꽃부터 뿌리까지 식물 생태 전부를 잘 나타낸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식물 세밀화가는 영국의 경우 1700년대부터 있던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보고 또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을 함빡 머금는 물봉선은 캐는 순간 시들어 버리지요. 물봉선을 그릴 때는 매일 그 앞에 가서 자매처럼 지켜봐야 합니다.”
이들은 꽃잎 속의 수술 암술, 포자, 잎맥, 잔뿌리를 그려 내기 위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카메라로 접사 촬영을 한다. 식물학자들의 도움말도 꼼꼼히 메모한다. 매년 10월경에는 이렇게 모은 자료들이 제법 쌓인다. 공 씨는 이를 “(식물들이 자라지 않는 겨울철 작업을 위한) 월동 준비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년 어느 때 어디를 가면 어떤 식물이 움을 틔우는지, 꽃을 피우는지 알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권 씨는 “식물들은 참 고유한 빛을 가지고 있어서 수채화 붓질을 수십 번씩 한다”며 “그림이 잘못 됐을 땐 높은 분들보다 식물한테 가장 미안하다”며 웃었다.
이들의 세밀화는 경기 포천시 광릉의 국립수목원 특별전시실(22일까지)과 서울 영풍문고 강남점(10일까지)에서 전시된다.
포천=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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