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남은 문화재
낙산사 7층 석탑은 불길이 닿아 기단 일부가 훼손됐지만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조 13년(1467년)에 현재의 7층 석탑으로 중창되면서 수정 염주와 여의주가 탑 속에 봉안됐다고 전해진다.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던 건칠관음보살좌상(乾漆觀音菩薩坐像·보물 제1362호)은 화마가 덮치기 직전 스님들이 의상대 교육관으로 긴급 대피시켜 화를 면했다. 건칠불상은 (나무나 종이, 천으로 불상을 만든 뒤 옻칠을 하고 다시 도금한 불상이다.
고승 의상(義湘)이 낙산사를 창건할 때 좌선하였던 곳으로 전해지는 의상대도 이번 화마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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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문화재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낙산사 동종이 녹아내렸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 동종은 조선 예종이 즉위 원년(1469년)에 아버지 세조(수양대군)를 위해 제작해 낙산사에 보시(布施)한 것으로, 높이 158cm 입지름 98cm다. 종 꼭대기에는 용 두 마리가 서로 등지고 있어 고리 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 부분에는 연꽃잎으로 띠를 둘렀다. 안귀숙(安貴淑) 문화재전문위원은 “당시 왕실의 최고 전문가들이 총동원돼 만든 걸작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밖에 소실된 건물 14동은 대부분 6·25전쟁 때 불타 없어져 다시 복구된 건물들이다. 이 가운데 홍예문과 원통보전은 각각 낙산사의 정문과 본당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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