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서울]‘흑수선’과 서울역

  • 입력 2005년 4월 8일 18시 08분


영화 ‘흑수선’에서 6·25전쟁 때 암호명 흑수선으로 북측을 도왔던 손지혜(이미연)가 자신을 쫓아온 오 형사(이정재)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아래).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사적 제284호로 지정된 옛 서울역사 지붕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옛 서울역사는 돔과 고전적인 장식이 특징인 르네상스풍의 건물이다. 권주훈 기자
영화 ‘흑수선’에서 6·25전쟁 때 암호명 흑수선으로 북측을 도왔던 손지혜(이미연)가 자신을 쫓아온 오 형사(이정재)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아래).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사적 제284호로 지정된 옛 서울역사 지붕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옛 서울역사는 돔과 고전적인 장식이 특징인 르네상스풍의 건물이다. 권주훈 기자
배창호 감독의 영화 ‘흑수선’(2001년 작)은 5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스릴러다.

비전향 장기수 황석(안성기)이 출감한 뒤 서울에서는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 뒤를 쫓던 오 형사(이정재)는 사건 뒤에 6·25전쟁과 거제포로수용소를 둘러싼 기나긴 사연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김성종 씨의 원작소설 ‘최후의 증인’이 나온 것은 1974년이고 이두용 감독이 이 소설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것은 1980년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당시의 무지막지한 검열을 통과하면서 무려 40여 분이 잘려나갔다.

20년이 지난 2001년에는 분단 상황과 이념 대립을 소재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너무 지나 영화 내용이 어색해졌다. 주연 배우들의 노인 분장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극중 나이가 70세 정도인 손지혜(이미연)가 서울역사 지붕에 올라 팔팔한 젊은 형사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도 뭔가 우스꽝스럽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의문의 살인범이 지시한 대로 수사팀이 황석을 서울역에 데리고 오고 나서 벌어지는 장면. 이후 영화가 끝날 때까지 10여 분간 카메라는 옛 서울역 대합실과 서울역 광장, 역사 지붕과 승강장을 오가며 범인과 오 형사의 대결을 보여준다.

격동의 현대사 때문에 일그러진 인생을 살아야 했던 흑수선의 등장인물들처럼, 영화의 배경인 옛 서울역사도 기구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이야 수도 서울의 관문이라지만 1922년 현 역사를 지을 당시에는 한반도 수탈과 대륙침략의 전진기지로서 만든 것이다. 르네상스풍의 건물 외양도 일본 도쿄역과 비슷하다.

6·25전쟁 때 많은 부분이 파괴됐으며 수리 과정에서 중앙홀 천창(天窓)이 훼손됐다. 개발시대에는 역 주변에 사창가와 심야 만화방, 쪽방 등 불량업소들이 난립했으며 한편으로는 반정부 데모가 자주 벌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1989년의 역사 현대화사업은 당시 사회의 수준을 반영하고 있고, 지하도와 광장을 점령하다시피 한 노숙자와 걸인들은 외환위기 이후 불황과 빈부격차를 상징하고 있다.

사적 제284호인 옛 서울역사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살아있는 문화재’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남의 기쁨, 이별의 슬픔을 함께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양대 도시공학과 원제무 교수는 “도시의 중요한 공공 공간인 서울역 주변이 사람들의 왕래를 편하게 해주지도 못하고 즐겨 찾는 곳도 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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