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년 전만 해도 가방만 올려놓고 사람은 없는 이른바 ‘사석(死席)’ 때문에 짜증을 느끼기 일쑤였다. 그렇다보니 아침마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이 팽팽했다. 자리를 못 구할 경우 짐만 있는 곳에 잠시 앉는 속칭 ‘메뚜기’ 노릇을 하면서도 언제 자리 주인이 나타날지 몰라 불안해했다.
그러나 총학생회가 중심이 된 ‘레드카드 제도’가 시행되면서 도서관 분위기는 싹 바뀌었다. 이 제도는 자리를 잡은 학생이 자리를 비울 때는 빨간색 카드에 언제까지 공석인지를 적어둬 빈 시간 동안 다른 학생들이 맘 편히 이용하도록 하는 운동.
전 씨는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자리 시비를 거의 볼 수 없다”면서 “함께 실시 중인 ‘휴대전화 진동으로 바꾸기’ ‘이동 중 슬리퍼 끌지 말기’ 등도 작지만 학생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는 배려”라고 말했다.
대학의 캠퍼스가 무질서와 지성 부재(不在)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오래된 일. 이달 초 서울대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줄 것을 요구하는 동료 학생의 얼굴을 때린 학생이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이 학생은 경찰에서 “친구들과 모르는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모르는 사람이 조용히 해달라고 요구하자 화가 나 주먹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학생들이 중심이 돼 생활 곳곳에서 작은 배려를 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며 대학가 문화가 바뀌기 시작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는 모두가 불편해진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
한양대는 학생들의 자체적인 캠퍼스 정화운동이 효과를 본 경우. 이 운동 직전까지 교내 곳곳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담배꽁초와 쓰레기 등으로 한 달에 청소비용만 1000만 원 이상 들었다. 그러나 2003년 학생들이 중심이 된 ‘클린학원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매년 캠퍼스의 청결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이 학생회 측의 자체 평가. 한국외국어대 학생생활상담연구소가 운영하는 ‘학교생활프로그램’은 외국인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은 학교의 특성에 부합하는 배려 운동. 한국 예절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계 학생과 한국 학생들이 직접 서로의 문화를 배우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이 대학 영어학부 1학년 임영진(21·여) 씨는 “외국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탓에 ‘한국식 선후배 문화’ 등에 서툴러 맘고생이 심했다”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서로 조금씩만 배려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 가장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