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28>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4월 10일 18시 03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위나라 대나라 조나라가 차례로 한군(漢軍)에게 넘어가자, 연나라는 하늘같이 믿는 패왕의 서초(西楚)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섬처럼 북쪽에 홀로 남게 되고 말았다. 연왕(燕王) 장도(臧도)는 장수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일이 그렇게 되니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한신의 대군이 밀려들지 몰라 떨고 있는데 먼저 사자가 오자 반갑게 맞아들였다.

한신의 사자가 힘들여 달랠 것도 없이 연왕 장도는 스스로 한왕(漢王) 밑에 들기를 빌었다. 비록 패왕이 연왕으로 세우기는 해도, 장도에게는 또한 패왕이 요동왕(遼東王)으로 세운 한광(韓廣)을 죽이고 그 땅을 아우른 죄가 있었다. 전(前) 연왕이었던 한광이 임지인 요동으로 가지 않고 뻗댄 탓이기는 했지만, 그를 죽이고 요동 땅까지 뺏은 일을 패왕이 용서할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연왕 장도가 항복하자 하수(河水) 이북의 땅은 모두 한나라의 깃발 아래 들게 되었다. 이에 한숨을 돌린 한신은 조나라에 머물러 쉬면서 형양에 있는 한왕 유방에게 사자를 보냈다. 먼저 조나라를 쳐부순 데 이어 연나라의 항복까지 받아냈음을 알리고, 아울러 장이를 조왕(趙王)으로 세워 조나라를 안정되게 다스리자고 청했다.

‘좌승상 겸 대장군의 청을 받아들여 전 상산왕(常山王) 장이를 조왕으로 삼는다. 일후 조왕은 대장군을 도와 동북(東北)을 안정시키고, 그 땅의 병원(兵員)과 물자를 거두어 형양과 성고(成皐)의 소용에 충당케 하라’

며칠 안돼 한왕에게서 그와 같은 답서가 왔다. 이에 장이는 그날로 조왕이 되어 오랜 한을 풀었다. 이량(李良)이 무신(武臣)을 죽이고 난리를 일으킨 이래 장이가 끊임없이 맴돌며 은원을 쌓아오던 것이 조나라의 임금 자리였다.

장이를 조왕으로 세우게 함으로써 한신은 광무군 이 좌거에 이어 또 한사람의 탁월한 정치적 식견을 빌려 쓸 수 있게 되었다. 오래 원하던 자리를 얻게 해준 고마움 때문인지, 장이는 그때부터 한신의 사람이 되어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었다. 따라서 장이가 이태 뒤 일찍 죽은 것은 뒷날의 한신에게는 불행일지 모르지만, 장이에게는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그 밖에 한신이 그때 조나라에서 새로 얻은 사람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괴철(괴澈)이 있다. 괴철은 범양(范陽) 사람인데, 그 이름이 한무제(漢武帝)의 휘자(諱字)와 같다 하여 사마천이 ‘사기’에서 이름을 바꿔 쓴 뒤로는 괴통(괴通)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배우고 읽어 아는 것이 많고, 시세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눈길이 매서워 진작부터 현사(賢士)라는 소리를 들었다.

괴철이 세상에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진승(陳勝)의 장수인 무신(武臣)이 처음 조나라로 밀고들 때였다. 괴철은 먼저 범양령(范陽令)을 찾아보고 무신에게 맞서지 말 것을 권했다. 또 무신에게는 항복하는 범양령을 우대하여 남이 부러워하며 그를 따를 수 있게 하라고 권했다. 그리하여 범양령을 제후로 올려 세우게 한 다음, 스스로 무신의 사자가 되어 다른 군현의 수령들을 달래니, 조나라의 성 30여 개가 싸워보지도 않고 무신에게 항복하였다.

그 바람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조나라를 평정해 조왕이 된 무신군은 그 뒤 괴철을 무겁게 썼다. 그러나 이량의 난리 때 관직을 잃고 숨어살다가, 이제 다시 나타나 한신의 사람이 된 것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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