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안병준]‘교황의 힘’은 도덕적 정당성

  • 입력 2005년 4월 10일 18시 49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진실로 세계의 판도를 바꿔 놓은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왔는가. 그 원천은 그가 세계의 불의와 탄압을 시정하기 위해 몸소 실천한 신앙과 헌신적 행동이라 생각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산주의 체제와 동서 냉전을 종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찍이 소련제국을 제패했던 스탈린은 누군가가 교황의 큰 권위를 논했을 때 “과연 그는 몇 개의 사단을 갖고 있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단 1개의 소대 병력도 갖고 있지 않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스탈린이 실로 막강한 무력으로 이룩해 놓은 동유럽 및 소련 체제의 붕괴에 촉매 역할을 했고 그 결과 냉전의 종말에 큰 기여를 했던 것이다.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그가 1979년 당시 공산체제 하의 고국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국민을 향해 “두려워 말라. 폴란드의 운명이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 말에 힘을 얻어 드디어 폴란드인들은 공산주의 사상 최초로 자유노조연대를 결성했고, 이를 영도한 바웬사는 반공 시위를 주도했다.

▼공산주의 붕괴 촉매 역할▼

1980년에 공산당을 지휘했던 야루젤스키 장군은 계엄령을 선포해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바로 이때 교황은 다시 폴란드를 방문했는데 그를 영접한 야루젤스키는 교황의 권위에 압도돼 손은 떨리고 있었고 교황을 맞이하러 나온 수백만 군중의 집결을 저지하지 못했다. 교황과의 비밀회담에서 야루젤스키는 소련군의 개입을 막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면서 유혈사태를 막는 데 교황의 협조를 간구했으며, 교황은 노조와의 대화를 권했다.

차후 야루젤스키는 계엄을 해제했고, 1983년에는 바웬사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1990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한편 소련에서는 공산당 총서기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했고 폴란드에는 군사개입을 하지 않았다. 1989년에 그는 교황청을 직접 방문해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 여파는 결국 기타 7개 동유럽 공산 정권의 붕괴를 초래했다.

1990년에는 강대국들도 원치 않았던 독일 통일이 기적적으로 실현됐다. 마침내 1991년 말에 소련제국도 와해됐고 냉전이 종결됐다.

이와 같이 인류 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은 교황의 힘은 영토나 군사력보다도 전 세계의 여론과 양심을 움직일 수 있는 그의 도덕적 정당성에서 나왔다. 사실 바티칸은 0.44km²의 영토와 921명의 시민을 가진 세계 최소 국가다. 하지만 이 나라는 현재 대만과의 기존 관계 때문에 국교를 갖고 있지 못한 중국을 제외하고 192개 유엔 회원국 중에서 미국보다도 1개 더 많은 175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교황은 단지 11억 천주교도뿐 아니라 60여억 명의 전 인류를 향해 생명 인권 및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몸소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다. 여기서 나오는 그의 권위를 존중하므로 교황의 장례식에 80여 국가에서 조문단을 파견했고 세계 각지에서 400여만 명이 바티칸으로 집결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내가 타인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바를 스스로 하게 만드는 능력을 우리는 ‘연식 국력(soft power)’이라 부른다. 교황은 참으로 크나큰 연식 국력을 누렸던 것이다.

▼평화-화해정신 세계여론 환기▼

물론 이러한 힘이 강대국들의 군사행동을 억지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1년의 걸프전쟁과 2003년의 이라크전쟁을 사전에 방지하는 데 안간 힘을 썼으나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일관되게 강조했던 평화와 화해 정신은 세계여론을 환기시켰고 인류가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극단적 만행을 자제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이 결과 인류문명과 이 지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는 결코 적지 않은 힘을 행사했다.

이러한 유산은 차기 교황도 계승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가 못다 한 빈곤 퇴치와 여권 신장 등 인류의 공공선을 전파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안병준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