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진지한 얼굴로 황당한 대사를 한다. 그래서 웃긴다.”
‘신라의 달밤’부터 ‘귀신이 산다’까지 코미디 배우로 자리를 굳힌 그가 진지한 얼굴에 어울릴 역에 도전했다. 19세기 초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한 역사 스릴러 ‘혈의 누’에서 합리적인 수사관 원규 역을 맡은 것. 감독은 2000년 데뷔작 ‘번지 점프를 하다’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한 김대승(38) 감독이다.
코미디 연기의 정점에서 ‘가지 않은 길’을 택한 차승원과 데뷔작에 이어 두 번째 영화가 모두 성공하기 어렵다는 한국 영화계의 징크스를 깨려는 김 감독을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한 이탈리안 식당에서 만났다.
○갓 쓰면 2m… ‘혈의 누’는 내 영화인생의 승부처
지난해 초 ‘혈의 누’ 제작사인 좋은영화의 김미희 대표가 김 감독을 만났다.
“주인공 원규 역에 승원 씨가 열의를 보이고 있어요.” “네에? … 생각해 볼게요.”
김 감독은 속으로 ‘김 대표가 장난을 치나’ 했다. ‘갓 쓰면 2m인데, 무슨 사극을 찍어.’ 그러나 차승원의 열의를 높이 산 김 감독은 그의 출연작을 모두 봤다. 그리고 왜 그가 스타가 됐는지 알았다.
“존재감이 대단해요. 카메라를 세팅하고 다른 사람을 놓으면 앵글이 이상한데, 승원 씨가 들어서면 그 자체로 앵글이 빛나요. 화면과 작품을 압도하는 힘이지요.”
○감독과 배우의 갈등 그리고 캔 커피 화해
촬영 첫날. 배우 최종원은 앉아서 수박을 먹고 차승원은 곁에 서서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김 감독은 차승원이 팔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어느 날 차승원이 김 감독에게 술 한잔 하자고 했다.
“저 좀 놔두시면 안 돼요?” “안 돼요.” “왜 그렇게 독선적이세요?” “감독이니까요.” 며칠 뒤 차승원이 캔 커피를 사들고 김 감독을 찾았다. 원규에 대한 해석 차이부터 영화가 나아갈 방향까지 4시간을 이야기했고 갈등은 풀렸다.
○완벽만 추구하는 무결점주의자… 이런 독종 처음 봤어요
최근 경기 남양주시 영화종합촬영소 내의 스튜디오에서 차승원과 김 감독은 동시녹음 때 미진했던 부분을 이틀 동안 재녹음했다. 끝났다고 생각한 김 감독이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오니 차승원이 녹음기사를 구슬려 또 녹음을 하고 있었다.
또 촬영 중 낙마해 갈비뼈에 금이 간 차승원이 2층에서 떨어져 구르는 신을 찍을 때였다. 감독은 오케이 사인을 냈지만 차승원은 힘없이 떨어졌다며 10번을 더 했다. 결국 금이 간 갈비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이렇게 독한 인간은 처음 봤어요. 바닥에서 톱까지 올라온 밑천이 이거였구나. 정말 성실한 놈은 못 당한다는 거죠.”(김 감독)
“잘 못하니까 그러는 거예요. 그 정도도 안 하면 내가 정말 나쁜 놈이지요.”(차승원)
○호흡까지도 섬세… 그와 멜로영화 만들고 싶다
영화의 막바지, 차승원과 조연 박용우가 서로 격앙돼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
김 감독은 “승원 씨가 대사 사이사이 호흡의 떨림을 표현하더라고요. 세련된 외모 말고도 이런 감정의 디테일한 면이 있었던 거지요”라며 감격했다.
차승원은 촬영장에서 얼굴에 살이 붙어 근육의 미세한 떨림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까봐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김 감독은 이런 그와 멜로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차승원은 “솔직히 긴장된다”고 털어놨다.
“사람들은 차승원을 그냥 보면 얼굴에 ‘텐션’이 있다는 것을 알거든요. 그걸 요번에 써먹은 건데… 뚜껑을 열어 봐야죠.”
5월 4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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