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 컨설턴트인 딕 모리스는 ‘신군주론’(아르케)에서 이렇게 말한다. 논쟁에서는 어떻게 말하느냐보다는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상대가 제기한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되어 있는 한, 아무리 철저한 논리를 펴도 여론싸움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쟁점이 되는 사실은 일단 ‘문제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독도 영유권 논쟁에 도입해 보자. 영유권에 대한 우리의 주장이 강도를 더해갈수록 독도는 점점 더 세계인들에게 분쟁지역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다.
그러면 우리의 대응은 어때야 할까? 현실주의의 고전(古典)인 ‘한비자’(현암사)를 보자. 한비자는 “무릇 군주는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고 충언한다. 권력자가 성급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 윗사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관료들은 코드에 맞는 말만 할 수밖에 없다. 거울에 비추듯 서로의 말을 주고받는 가운데, 어느덧 권력자는 자기 입맛에 맞게 현실을 재단해 보게 될 터이다.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흥분한 민족감정에 기대어 연일 강성주장을 내놓는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이 걱정된다.
참담한 마음으로 서가를 거닐다 보니, ‘일본제국 흥망사’(궁리)가 눈에 들어온다. 국수주의자들은 외부의 위협과 국가적 굴욕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전 국민이 총화 단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일본 군부 내에서조차 미국과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은 많았다. 전원 옥쇄(玉碎)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일본의 극우들은 황국(皇國)의 상처받은 자존심과 정신주의를 내세우며 비난을 잠재우곤 했다. 우리의 정당한 비판이 도리어 일본 극우주의자가 필요로 하는 적국의 허상(虛像)을 만들어 주고 있지나 않은지 냉엄하게 성찰해 볼 일이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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