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미국시대의 종말’…美주도 세계질서 최대복병 유럽

  • 입력 2005년 4월 15일 16시 51분


◇미국시대의 종말/찰스 쿱찬 지음·황지현 옮김/519쪽·2만2900원·김영사

소비에트연방 및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미소 두 초강대국의 경쟁은 막을 내렸다. 역사의 전개 과정은 미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단극(單極)체제의 도래로 마감되었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과연 ‘팍스 아메리카나’는 앞으로 몇 세기 동안 지속될 막강한 세계질서인가.

이 책의 저자 쿱찬은 미국과 세계가 곧바로 다가올 새 다극체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다른 국제정치 전문가들과 미래학자들이 중국 인도 등의 급부상을 거론하는 것과 달리, 쿱찬은 다가올 시대에 미국과 다극체제를 공유할 새 강자는 바로 ‘유럽’이라고 예언한다. 유럽은 기존의 정치적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공동체로, 미국처럼 중앙집권적 연방을 이룰 수 없어 전략가들의 이목을 끌지 못해 왔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인들은 경쟁을 협력과 상호이익의 논리로 바꾸어 결속을 다져 왔으며, 곧 미국과 대적할 수 있는 거대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저자가 볼 때 현재의 미국은 이런 새로운 다극체제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9·11테러 이후 본토 방위가 가장 중요해진 미국은 다른 임무에서 손을 떼고 해외 부담을 줄이며 다른 ‘파트너’ 국가가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가 미국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르기를 기대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새로운 강자의 신규 진입을 허용하고 우호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러시아를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고, 중국의 지역 내 역할을 인정하며, 특히 유럽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우호관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질서를 위해 저자는 무엇보다 ‘국제기구의 활성화’를 강조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국가안보위원회 수석연구원을 지낸 저자의 주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와 크게 대비된다. 최근 유엔주재 미국대사로 지명되었다가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른 존 볼턴 전 국무차관을 국제 형사재판소(ICC) 조약에 극렬 반대하는 등 ‘일방주의자’의 전형으로 소개하고 있는 점도 시사하는 바 크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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