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도… 유족도…가짜에 두손든다

  • 입력 2005년 4월 19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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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화단이 이중섭 그림 위작 시비로 술렁이는 요즘, 화랑가에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도 혹시 가짜 아니냐’는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지금은 주로 외국 작품만 거래하고 있는 20여 년 경력의 한 화상(畵商)은 “10여 년 전 판매한 이중섭 그림들이 혹 가짜 아니냐는 소장자들의 문의로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서는 이번 일이 가뜩이나 얼어붙은 미술시장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고질적 병폐인 위작 근절을 위해 화단 종사자들이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위작 실태와 대책을 알아본다. 》

▽위작은 얼마나, 어떻게 만들어지나=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가 1982년부터 2001년까지 20년간 미술작품 2525점을 감정한 결과 약 30%(745점)가 ‘가짜’인 것으로 판명됐다. 위작비율이 높은 작가로는 이중섭이 75%로 가장 많았고, 이어 박수근(36.6%) 김환기(23.5%) 장욱진(20.5%) 순이었다. 이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품들에 대한 감정결과여서 실제 위작 비율은 더 높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위작 제조 기법 중에는 원작에 얇은 종이를 대고 베끼거나 투과기를 이용해 선을 복사한 뒤 채색을 입히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이 경우 작품 크기, 필선의 속도감이나 힘, 미세한 표현 등을 분석해 위작 여부를 가린다. 대상 작가의 재료 선택이나 화풍을 집중적으로 익힌 뒤 아예 새롭게 그리는 경우도 있다.

화랑협회의 한 감정위원은 “김영주 황유엽 이상범 김기창 등의 위조 작품들은 진품 뺨친다”면서 “최근에는 위조범의 수준이 감정인의 눈을 속일 정도로까지 발전해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천경자 작 ‘테베기행’(1984년, 개인소장)의 진짜(왼쪽)와 가짜. 얼핏보면 크기와 색감이 똑같아 구분하기가 힘들지만 자세히 보면 가운데 묘사 내용이 다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술품 보존과학 전문가이며 감정가협회 감정위원인 최명윤 씨는 “과거 몇몇 사람들에 의해 소규모로 만들어지던 위작들이 최근에는 조직화 대형화 지능화하고 있는 게 특징”이라며 “아예 공장을 차려놓고 전문가들을 고용해 대량 생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밝혔다. 한 화상도 “요즘 화단에는 한번 위작이 나왔다 하면 마치 유행처럼 대량으로 돌아다녀 ‘조직’의 존재를 추정하게 된다”며 “최근에는 천경자 화백의 ‘아프리카 기행’ 시리즈가 대규모로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유족 소장품이라고 해서 모두 진품이라고 믿을 수도 없다는 게 화상들과 감정인들의 고민. 서울 인사동의 한 화상은 “작고작가의 부인이 분명 장롱에서 꺼내 준 유명 화백의 그림인데도 감정결과 가짜로 드러나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며 “예전에는 심지어 작가들 스스로 내놓은 작품 중에도 가짜가 있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대책=미술품 감정전문가인 최병식 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는 “중요한 것은 ‘유족에게서 나왔다’ ‘작가가 직접 준 것이다’ 등 출처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감정시스템을 거쳤느냐 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공신력 있는 감정연구소를 만들고 감정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술시장이 발달해 있는 선진국의 경우, 전문가 교육 배출 시스템과 자격증 제도 등이 구축되어 있으나 우리는 아직 전문가집단이 배출될 수 있는 토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예화랑 이숙영 사장은 “‘싸면서도 좋은 미술작품을 찾는’ 구매자들의 심리가 가짜를 만드는 공급구조의 한 축을 이룬다”며 “신뢰할 수 있는 화상으로부터 제 값을 주고 그림을 산다는 생각이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아는 만큼 보인다’고 미술품을 사는 사람 스스로가 해당 화가의 작풍을 연구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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