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사회 생활에 반대하더라도 일을 선택하겠다.
많은 돈을 벌고 싶으며 꿈은 최고경영자(CEO). 아무 조건 없는 섹스는 즐기지만 섹스나 데이트가 인생에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새롭게 떠오른 신조어 ‘콘트라섹슈얼(contrasexual)’을 설명하는 말이다.
콘트라섹슈얼은 라틴어로 ‘반대’라는 뜻의 ‘contra’와‘성’을 뜻하는‘sexual’을 결합시킨 말로 영국 미래학연구소에서 만들었다.
‘예쁜 남자’를 추구하는 메트로섹슈얼에 비해 ‘강한 여자’를 추구하는 20, 30대 젊은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최근 “콘트라섹슈얼이 새로운 신드롬이 되고 있다”며 “특히 여성들이 일찍 결혼하기를 기대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풍조는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
○ 콘트라섹슈얼 라이프
케이블 여성 채널 ‘온스타일’은 22일부터 ‘싱글즈 인 서울 3-콘트라섹슈얼’을 방영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콘트라섹슈얼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온스타일 김제현 팀장은 “사회에 진출하려는 여성들이 일과 결혼, 육아를 놓고 갈등했던 예전에 반해 콘트라섹슈얼은 성공할 때까지 결혼하지 않겠다며 일을 우선 순위에 놓는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출연자 중의 한 사람인 권은아 씨는 미국계 광고대행사인 레오버넷의 광고 기획자. 33세인 그는 “독신주의는 아니지만 일과 결혼을 선택하라면 기꺼이 일을 선택할 것이며 결혼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못 박았다.
아티스트 낸시 랭은 “결혼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며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내 꿈을 이해하고 도와줄 만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결혼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성취욕이 강한 그는 영향력이 큰 아티스트가 되고 이와 더불어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싶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일도 열심히 하지만 잘 ‘논다’는 것도 공통점.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노는 것을 좋아한다.
클래식을 전공한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이며 대학 강사인 메이세컨(본명 김사라·31) 씨는 “일주일에 6일은 죽도록 일만 하고 단 하루를 노는 데 전념한다”며 “친구들끼리 파티를 열거나 클럽에서 노는데, 이날은 평소와 달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치장해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적당한 근육질의 몸매를 위해 운동을 하는 등 자기 관리에 철저한 것도 공통점이다. 외식업체 프랜차이즈 컨설턴트인 유지영(33) 씨는 등산과 마라톤을 즐기며 앞으로 살사댄스를 배울 예정.
이들은 또 유행에 민감하지만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패션을 추구하며 문화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취미도 하나 이상씩 갖고 있다.
외국에서는 부담없는 성생활도 콘트라섹슈얼의 특징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한국의 콘트라섹슈얼들은 그런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 프로그램에는 모델 지현정, YTN 앵커 정애숙 씨 등 모두 10명이 출연한다.
○ 콘트라섹슈얼 vs 메트로섹슈얼
흥미로운 현상은 여성들이 콘트라섹슈얼을 주장하면서 남성적 가치들을 받아들이는 데 비해 메트로섹슈얼화된 남성들은 여성적 가치들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계 지향적이던 여성들이 성취 지향적으로 변하는 반면 남성들은 외모를 가꾸고 섬세한 감성을 가꾸고 있다. 즉 남녀가 서로 닮아가면서 양성형 인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말 남성의 66.7%, 여성의 57.3%는 ‘양성형’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성(異性)의 장점을 추구하는 남성을 ‘미스터 뷰티(Mr. Beauty)’, 여성은 ‘미즈 스트롱(Ms. Strong)’으로 규정했다. 이는 메트로섹슈얼이나 콘트라섹슈얼과 거의 비슷한 개념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트렌드는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시대 변화에 따라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메트로섹슈얼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홍보대행사 오피스H의 황의건(36) 이사는 예민하고 감각적인 사람들이 이 시대와 사회에 맞게 본능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잘 웁니다. 반면 콘트라섹슈얼은 울지 않고 캔디처럼 꿋꿋합니다. 이들은 그동안 여성성의 이름아래 가려졌던 논리적이고 강한 면모를 발휘하고 있어요. 반면 요즘 남자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 울어요.”
○ 콘트라섹슈얼 이라고?
여성들이 콘트라섹슈얼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말 그대로 ‘지향’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온스타일도 “콘트라섹슈얼의 조건에 맞는 출연자를 섭외하기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젊은 여성들은 일이 결혼보다 중요하다고 대답하면서도 지난해 MBC 미니시리즈 ‘결혼하고 싶은 여자’나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KBS 2TV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나오는 결혼에 목매다는 노처녀들의 얘기에 공감한다.
공무원인 정모(30) 씨는 “일로 성공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막상 직장생활을 해 보니 내가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남편 잘 만나 세련된 전업주부로 사는 친구를 보면 부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 남성들은 콘트라섹슈얼들에 대해 ‘이기적이고 드센 여자’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으며 사회적인 분위기도 아직은 그렇다. 회사원 이모(36) 씨는 “젊을 때야 일 때문에 결혼 안 한다지만 10년이 지나도 그렇겠냐”며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핑계를 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커리어우먼 김지은(35) 씨는 “냄비 같은 사랑보다 수학 공식처럼 답이 나오는 일이 더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왔고 아직은 결혼보다 일이 재미있다”며 “가끔 결혼도 노력이라며 ‘정신 못 차린다’고 훈계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당황스러운데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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