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해외탐사 프로그램의 ‘명예 탐험대장’으로 널리 알려진 송영복(스페인어학·사진) 경희대 교수가 14년에 걸친 마야 문명 탐구의 역정을 ‘마야’(상지사)라는 제목의 책으로 최근 엮어냈다. 335쪽 분량의 이 책에는 마야 유적과 오늘날 주민들의 생활상 등 그가 직접 찍은 사진만 무려 371장이 실리는 등 ‘발로 뛴’ 연구의 치열함을 보여 준다.
“대학시절 스페인어학을 전공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가진 중남미권에 흥미를 갖게 되었죠. 졸업하자마자 멕시코 국립자치대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지역문화학 커리큘럼 자체가 현장답사 위주로 짜여 있어, 짐을 풀자마자 다시 여장을 꾸리는 일의 연속이었어요.”
충분한 경제적 여유 없이 떠난 유학길이라 현장답사도 거의 ‘무전여행’식으로 해 냈다. 간청하다시피 하여 주민의 집에서 공짜 잠을 자고 공짜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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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적 여유가 있었다면 얻지 못했을 주민들과의 직접 접촉 경험을 오히려 더 많이 얻을 수 있었죠. 일상어에 섞인 옛 마야어의 자취뿐 아니라 우리나라 시골을 연상시키는 넉넉한 인심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마야어 상용과 마야의복 착용을 주장하는 반군 지배지역으로 들어갔다가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소환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면, 반군과 마약밀매 등의 선입견을 갖기 쉬운 이 지역 탐사는 대체로 안전한 편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의 연구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마야 문명권에서 노예제도와 계급제도가 없었다는 점. 마야 노예제도를 부정한 그의 석사학위 논문과 계급제도에 의문을 던진 박사학위 논문은 멕시코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유적을 분석하면 상류계급의 거주지와 이른바 중하층 계급의 거주지 간에 부의 불균형이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어요. 언어 관습에서도 ‘통치’ ‘정부’라는 개념 대신 ‘행정’ ‘협력’ 등의 개념이 두드러져요. 이는 멕시코 학계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2000년 모교인 경희대 교수로 임용된 뒤에도 틈만 나면 멕시코 과테말라 등지를 누비며 마야 문명의 자취를 찾아 돌아다닌다는 그는 “문명 탐구와 꽉 짜인 일정은 상극의 관계”라고 말했다. “며칠 동안 몇 군데를 방문하겠다는 식으로는 수박 겉핥기 방문에 그치고 말죠. 주민들과 같이 생활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 비로소 모든 것이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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