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씨를 뿌리는 모습에서 ‘씨’와 ‘뿌리’의 개념이 나왔는데 氏族(씨족)이나 姓氏(성씨)는 이런 뜻을 반영하였다. 昏(어두울 혼)은 해(日·일)가 씨 뿌리는 사람(氏)의 발 아래로 떨어진 시간대를 말하였으며, 옛날의 결혼은 이 시간대에 이루어졌기에 婚(혼인할 혼)이 만들어졌다. 또 해가 지면 ‘어두워’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으므로 昏은 ‘불분명함’을 뜻하게 되었는데, 혼(어리석을 혼)이나 t(물 흐릴 혼), u(눈 어두울 혼) 등에는 이러한 뜻이 담겼다.
다음, 씨를 뿌리려 허리를 굽힌 데서 ‘낮(추)다’의 뜻이 나왔는데 금문의 자형은 이를 적극 반영하였다. 이후 氏는 ‘씨’를 뿌리는 곳인 땅을 강조한 점(주)을 더해 저(근본 저)로 분화하여 ‘낮다‘는 의미를 주로 표현했다. 예컨대 底(밑 저)는 집(엄·엄)의 아래(저)인 밑바닥을, v(해 기울 저)는 해(日)가 지평선 아래로 넘어감을, (저,지)(모래섬 저)는 평지보다 낮은 땅(土·토)인 모래섬을, 저(속적삼 저)는 속에 받쳐 입는 속적삼(衣·의)을 말한다.
하지만 氏와 저는 지금도 자주 섞여 쓰인다. 예컨대, 紙(종이 지)는 실((멱,사)·멱)과 같은 섬유질을 잘게 분쇄하여 물속에 가라앉혔다가(氏) 발로 떠서 말려 만드는 종이의 제작 방법을 표현했으며, 祗(공경할 지)는 씨(氏)를 제사(示·시) 대상으로 하여 숭배하는 모습을 담았다.
한편 民(백성 민)은 원래 포로나 노예의 반항 능력을 줄이고자 한쪽 눈을 예리한 침으로 해친 모습으로부터 ‘노예’라는 뜻을 그린 글자인데, 이후 ‘백성’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리고 자형도 지금처럼 변해 氏부수에 편입되었는데, 이는 백성(民)이 임금이나 귀족이 부리는 노예가 아니라 나라의 근본이며 ‘뿌리’로 그 지위가 향상되었음을 반영한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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