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40>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4월 24일 17시 56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 무렵 패왕 항우가 거느린 초군(楚軍) 본진은 복양(복陽) 부근에 머물러 있었다. 패왕의 급한 마음 같아서는 바로 하수(河水)를 건너 조나라의 옛 도읍인 한단(邯鄲) 쪽으로 밀고 들고 싶었으나, 한신과 장이의 주력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군사를 나누어 조나라로 들여보내 이곳저곳 찔러보게 하고 있었다.

처음 팽성을 떠날 때 패왕은 한왕 유방을 쫓아 바로 형양으로 밀고 들려 했다. 그러나 지난해 팽성을 비워두고 제나라를 치러 갔다가 한왕에게 쓴맛을 본 적이 있었다. 팽성의 방비를 든든히 하고, 자신도 먼 길을 가서 싸울 채비를 넉넉히 하다 보니 본진의 출발이 두어 달 늦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패왕답지 않은 그런 신중함이 한왕 유방에게는 한숨을 돌릴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되었다. 그 사이 패군(敗軍)을 수습한 한왕은 금세 10만 대군을 모아 형양과 성고, 오창을 삼각형으로 잇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런 다음 배짱 좋게 형양을 한신에게 맡겨 둔 채 관중으로 들어가 그때까지 폐구(廢丘)에서 버티던 옹왕(雍王) 장함을 잡아 죽임으로써 등 뒤까지 깨끗이 쓸고 돌아왔다.

그 바람에 가볍게 형양으로 치고 들지 못한 패왕은 대량에 본진을 멈추고 용저와 종리매에게 군사를 갈라주며 한군의 형세를 알아보게 했다. 하지만 광무(廣武)를 지나는 길은 번쾌가 그 산성(山城)에 버티고 있어 뚫고 나갈 수가 없고, 오창과 형양을 잇는 용도(甬道)는 주발이 굳게 지키고 있어 한군의 양도(糧道)를 끊어버리는 일도 뜻과 같지 못했다.

용저와 종리매로부터 그 같은 전갈이 오자 잠시 마음이 흔들린 패왕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다시 분통 터지는 소식이 들어 왔다.

“한나라의 기장(騎將) 관영이 산동을 휘젓고 다니며 우리 양도를 끊고 있습니다.”

적의 양도를 끊어버리는 것은 거록(鉅鹿)의 싸움 이래 자신이 즐겨 써오던 전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적이 그걸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하니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이에 패왕이 대군을 갈라 관영을 잡게 하려는데 다시 놀라운 소식이 들어왔다.

“한신이 위나라를 평정하고 위표(魏豹)를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관영도 원래 한신을 따라 나왔다가 이제 별장(別將)이 되어 우리 등 뒤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패왕은 형양으로 급하게 밀고 들 마음이 더욱 없어졌다. 하수 북쪽으로 달아났다고는 하나 팽월이 몇 만 군사로 부근을 떠도는 데다, 관영의 기마대가 산동을 바람처럼 휩쓸고 다녔다. 그런데 다시 한신이 대군을 이끌고 나와 위나라를 결딴내고 위표를 사로잡아 갔다고 하지 않는가.

“유성마(流星馬)를 보내 형양과 오창 쪽으로 나가 있는 장졸들을 모두 불러들이게 하라. 여기서 다시 한번 전열(戰列)을 정비한 뒤에 유방과 결판을 짓겠다!” 갑자기 한군이 불어나 사방에 깔린 듯한 느낌에 패왕이 그렇게 명을 내렸다. 그러다가 한왕이 다시 장이에게 3만 군사를 주어 한신과 함께 대(代)나라 조(趙)나라마저 치게 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패왕답지 않은 경계와 소심까지 드러냈다.

“이곳으로도 언제 적이 몰려들지 모른다. 참호를 깊게 파고 보루를 높여 진채를 한층 굳건히 하고 망보기와 척후를 늘려라!”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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