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굴드의 콘서트를 재현한다는데

  • 입력 2005년 4월 26일 19시 19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롤리 시에서는 다음 달에 특별한 콘서트가 열린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고, 이어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가 쇼팽의 전주곡집을 연주하게 된다. 특별한 점이라면? 굴드는 1982년, 코르토는 1962년에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이쯤에서 ‘피아노 롤’을 연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피아노 롤이란 종이 두루마리에 피아노 연주를 자동 기록하도록 만든 장치. 작곡가 말러, 거슈윈, 라흐마니노프와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20세기 초에 유행한 이 기계에 ‘녹음’을 남겼다. 피아노 롤 장치에 두루마리를 걸면 미세한 강약과 페달 사용까지 자동으로 재생된다. 그러나 굴드와 코르토는 ‘피아노 롤’ 녹음을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유전적 쌍둥이가 복제되기라도 했다는 말일까.

사실은 다음과 같다. 롤리 시에 있는 정보기술(IT) 회사 ‘젠프 스튜디오’는 피아노 연주 음반을 컴퓨터로 분석, 컴퓨터용 미디(MIDI)파일로 변환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컴퓨터는 소리 파일을 분석해 88개 피아노 건반 각각의 강약과 음표 길이로 해석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파일을 미디용 피아노에서 재생하면 생생한 ‘현장음’을 얻을 수 있다. 젠프 스튜디오의 관계자는 이번 콘서트에서 연주될 작품들의 원본 음반이 각각 1955년, 1928년에 녹음된 것으로 잡음이 많이 섞여 컴퓨터 분석 작업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사소해 보이는 이 사건은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른다. 피아노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진 악기이지만 컴퓨터로 분석하기는 쉬운 편이다. 88개의 음정이 고정돼 있어 강약과 음의 길이만 재현하면 되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이나 첼로라면 활을 대는 깊이와 긋는 속도, 비브라토(떨림)와 미세한 음정의 변화에 따라 훨씬 다양한 ‘경우의 수’가 발생하므로 피아노처럼 쉽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언젠가 과학자들은 낡은 녹음에서 바이올린의 생생한 소리를 재현하는 데도 성공할 것이다. 나아가 19세기 말의 잡음 심한 관현악 음반도 디지털 음색으로 되살려내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재현된 옛 연주가 음악계와 팬들의 완전한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1990년대 ‘옛 대가의 부활’로 각광받았던 ‘피아노 롤’ 음반들이 오늘날 외면당하는 것을 보면, 미디를 이용한 과거 연주의 디지털 복원도 음악 애호가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채 ‘눈길을 끄는 쇼’ 정도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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