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 原石탁본 ‘청명본’ 첫선

  • 입력 2005년 4월 27일 19시 10분


청명본 일부고려대박물관의 ‘고구려 특별전’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인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인 ‘청명본’ 일부. 일본 학자들이 글자를 임의로 판독해 글자에 먹을 덧칠해서 만든 이른바 ‘사코본’을 근거로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를 파했다(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로 해석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았던 대목이다. 하지만 청명본에는 ‘도해(渡海)’ 부분(점선 안)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사진 제공 고려대박물관
청명본 일부
고려대박물관의 ‘고구려 특별전’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인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인 ‘청명본’ 일부. 일본 학자들이 글자를 임의로 판독해 글자에 먹을 덧칠해서 만든 이른바 ‘사코본’을 근거로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를 파했다(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로 해석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았던 대목이다. 하지만 청명본에는 ‘도해(渡海)’ 부분(점선 안)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사진 제공 고려대박물관
고려대박물관이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고구려 특별전’(5월 7일∼7월 10일)에 광개토대왕비의 희귀 탁본 3점이 한꺼번에 전시된다. 이 탁본들은 그동안 비문(碑文)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던 광개토대왕비의 실체를 밝혀 줄 중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중에는 광개토대왕비 연구를 위한 대표적 원석탁본(原石拓本·아무런 가공 없이 비석의 상태 그대로 뜬 탁본)인 이른바 ‘청명(靑溟)본’과 ‘미즈다니(水谷)본’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한학자(漢學者)인 고 청명 임창순(靑溟 任昌淳) 선생이 소장했던 청명본은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미즈다니본은 일본 지바(千葉)현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탁본으로 고려대박물관은 이 탁본의 필름을 들여와 실물 크기의 패널로 만들어 전시한다. 박물관 측은 또 이들 원석탁본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로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석회탁본(石灰拓本·글자를 알아보기 쉽게 글자 바깥에 회칠을 한 뒤 뜬 탁본)도 함께 전시한다.

광개토대왕비
중국 지린 성 지안 시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지금은 유리비각이 둘러싸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즈다니본은 광복 후 일본학자 미즈다니 데지로(水谷悌二郞) 씨가 공개한 탁본으로 광개토대왕비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그때까지 가장 오래된 탁본은 1880년대 일본군 대위 사코 가게노부(酒勾景信)가 처음 소개한 ‘사코본’. 그러나 미즈다니 씨는 이 사코본이 글자를 임의로 판독해 외곽선을 뜨고 그 바깥에 먹을 칠해 만든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이란 사실과, 당시 유포돼 있던 많은 탁본들도 원석탁본이 아닌 석회탁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청명본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탁본 중 유일하게 탁본 과정에 대한 발문(跋文)이 있어 제작연대가 확실하다. 발문에는 1889년 청나라 종실 인사를 포함한 6인이 탁공(拓工) 이운종(李雲從)에게 탁본을 뜨게 했으며, 10여 벌의 탁본이 만들어져 한 벌의 값은 백은(白銀) 10금이었다고 적혀 있다.

임창순 선생의 아들 임세권(任世權) 안동대 교수는 “미즈다니본에는 청명본에 없는 훼손부분이 보여 청명본보다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미즈다니본의 일부 깨어져 나간 부분은 석회가 떨어져 나간 뒤의 상태일 수 있어 원석탁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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