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에는 광개토대왕비 연구를 위한 대표적 원석탁본(原石拓本·아무런 가공 없이 비석의 상태 그대로 뜬 탁본)인 이른바 ‘청명(靑溟)본’과 ‘미즈다니(水谷)본’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한학자(漢學者)인 고 청명 임창순(靑溟 任昌淳) 선생이 소장했던 청명본은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미즈다니본은 일본 지바(千葉)현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탁본으로 고려대박물관은 이 탁본의 필름을 들여와 실물 크기의 패널로 만들어 전시한다. 박물관 측은 또 이들 원석탁본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로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석회탁본(石灰拓本·글자를 알아보기 쉽게 글자 바깥에 회칠을 한 뒤 뜬 탁본)도 함께 전시한다.
중국 지린 성 지안 시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지금은 유리비각이 둘러싸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미즈다니본은 광복 후 일본학자 미즈다니 데지로(水谷悌二郞) 씨가 공개한 탁본으로 광개토대왕비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그때까지 가장 오래된 탁본은 1880년대 일본군 대위 사코 가게노부(酒勾景信)가 처음 소개한 ‘사코본’. 그러나 미즈다니 씨는 이 사코본이 글자를 임의로 판독해 외곽선을 뜨고 그 바깥에 먹을 칠해 만든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이란 사실과, 당시 유포돼 있던 많은 탁본들도 원석탁본이 아닌 석회탁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청명본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탁본 중 유일하게 탁본 과정에 대한 발문(跋文)이 있어 제작연대가 확실하다. 발문에는 1889년 청나라 종실 인사를 포함한 6인이 탁공(拓工) 이운종(李雲從)에게 탁본을 뜨게 했으며, 10여 벌의 탁본이 만들어져 한 벌의 값은 백은(白銀) 10금이었다고 적혀 있다.
임창순 선생의 아들 임세권(任世權) 안동대 교수는 “미즈다니본에는 청명본에 없는 훼손부분이 보여 청명본보다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미즈다니본의 일부 깨어져 나간 부분은 석회가 떨어져 나간 뒤의 상태일 수 있어 원석탁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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