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골레토의 동상을 찾습니까? 이 길을 따라 소르델로 광장으로 가 보세요.”
묻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을 보니 오페라 팬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
널찍한 소르델로 광장. 엄정한 수평선을 강조한 듯 좌우로 길게 늘어진 성곽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건물이 바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무대가 된 만토바 공의 궁전이다. 또 광장 한구석의 벽돌담장이 있는 집이 리골레토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뜰 안에는 곱추광대 리골레토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꼽추 치고는 키가 너무 커 실감이 나지 않는다.
○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오페라 새 장 열어
볼 만한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만토바에 더러 있는 것은 이 도시가 한때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융성했다는 뜻이다. 고대 로마의 문호 비르길리우스가 태어난 고도(古都) 만토바는 14세기에 들어와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했고, 경제적 번영과 함께 곤자가 가문이 지배자로 등장했다. 곤자가 가문이 통치할 때의 만토바는 건축가 알베르티(1404∼1472), 화가 만테냐(1431∼1506), 음악가 몬테베르디(1567∼1643) 등과 같은 예술가들을 불러 들여 문화적으로도 크게 번성했다. 특히 몬테베르디가 1590년 곤자가의 궁정음악가로 온 이후 만토바의 음악문화는 최상의 수준에 이르렀다. 당시 통치자는 빈첸초 곤자가 공(公)으로 부인은 메디치 가문의 엘레오노라였다.
이들의 둘째 아들 페르디난도는 박식한 대학생으로 1600년 10월 피렌체에서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메디치 가문 출신 마리아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공연된 야코포 페리의 ‘에우리디체’를 보고 완전히 매료됐다(‘에우리디체’는 악보와 함께 전해지는 사상 첫 오페라다). 난생 처음 ‘음악극’을 본 그는 몬테베르디에게 이와 비슷한 작품을 주문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몬테베르디는 당시까지 알려져 왔던 여러 가지의 음악형식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음악에도 늘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누가 봐도 피렌체의 야코포 페리에 비해 음악적으로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마치 야코포 페리의 ‘에우리디체’에 맞서는 듯, 같은 주제로 ‘오르페오’를 작곡해 만토바 궁정에서 1607년 발표했다.
‘오르페오’는 오페라 음악사에서 획기적인 걸작으로 꼽힌다. 그전 작품들만 하더라도 노래는 간단한 낭송 정도에 그쳤는데, 이 오페라에서는 음악이 극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오케스트라 편성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였다. 오케스트라는 30명 이상이 연주를 했는데 이것은 야코포 페리의 오페라보다 무려 다섯 배나 큰 규모였다. 이 많은 악기들은 목가적인 분위기, 무서운 저승 짐승들, 지하세계 왕의 엄숙한 명령 등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특히 노래가 등장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표현했기 때문에 가사의 내용을 모르더라도 노래만 들으면 그 사람이 어떤 역을 맡았으며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도 있었다. 몬테베르디 이전에는 이러한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소르델로 광장엔 곱추광대 리골레토의 절규 메아리
그 후 250여 년이 지난 뒤 이번에는 만토바를 배경으로 하는 걸작 오페라가 탄생했다. 바로 베르디의 ‘리골레토’. 그런데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희대의 난봉꾼 만토바 공이라면 분명히 곤자가 가문의 인물일 텐데, 곤자가 가문에 그런 인물이 있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만토바와 하등 상관없는 것이다.
사실 ‘리골레토’는 빅토르 위고가 1832년에 쓴 희곡 ‘환락의 왕(Le Roi s’amuse)’을 오페라로 만든 것으로 원작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의 파리가 이탈리아의 만토바로 바뀌었고,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도 만토바 공으로 바뀌었다.
‘리골레토’의 대본을 쓴 작가 프란체스코 피아베는 베네치아 공연을 앞두고 배경과 인물, 제목까지 완전히 바꿔야 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당시 베네치아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검열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리골레토 동상도 허구의 인물에게 바쳐진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동상은 베르디의 ‘리골레토’가 주는 감동을 간직한 팬들에게는 의미 깊은 기념상으로 팬들의 만토바 방문을 이끌고 있다. 허구냐 아니냐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목숨까지 던진 ‘첫사랑 순정’▼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는 1851년 3월 11일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오페라 극장에서 성공적으로 초연된 이래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중의 하나다. 그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소중한 딸 질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숨기며 사는 리골레토는 딸에게 성당에 가는 것 외에는 외출을 금지하고, 딸을 유혹하는 남자가 없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한다. 그러나 딸은 자신이 섬기는 난봉꾼 만토바 공에게 농락당하고 만다. 복수를 결심한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을 살해하기 위해 자객을 매수하는데, 아버지의 계획을 알아챈 딸은 만토바 공을 위해 변장한 자신의 몸을 자객의 칼에 내던진다. 순진한 딸에게는 만토바 공이 난봉꾼일지언정, 오로지 잊지 못할 첫사랑이었던 것이다. 죽어 가는 딸을 안은 채 리골레토는 절규하고, 멀리서 난봉꾼 만토바 공의 노래만 들려온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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