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요정’으로 불렸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1929∼1993).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더 넌스 스토리’ 등의 히트작에서 그녀는 청초함과 순수함의 진수를 스크린에 펼쳐 보였다. 관능미는커녕 마른 몸매와 낮은 가슴을 가졌음에도, 그녀는 여성들의 유행을 주도했고 남성들의 우상이 되었다.
이 책은 여느 전기가 그렇듯, 그런 주인공에 대한 찬사가 가득하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따라가면서 제작 현장의 뒷이야기나 관계자 증언을 풍부하게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작은 일화들이다. 비록 간헐적이었지만, 스크린 밖에서 그녀는 ‘보통 여자’로 살아가려 했다. 그리고 스크린에서 보여준 앙증맞은 순수나 일탈과 달리, 그녀는 자기 통제력과 사려 깊은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어릴 적 그녀의 부모는 친나치 활동에 적극 가담했다. 부모의 전력은 그녀의 배우생활에서 늘 잠재적 위협이었으나 그녀는 그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함께 영화를 찍은 이들은 “그녀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장점만 보려 했다. 그녀가 무례한 말이나 사람들을 꾸짖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로마의 휴일’에 캐스팅되기 전의 일화. 이 영화의 제작사인 파라마운트가 당시 스타였던 캐서린 헵번과 혼동되지 않도록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 막 스타덤에 오른 여배우가 할리우드의 이런 제안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간명했다.
“나를 원한다면 내 이름도 인정해 줘야 합니다.”
‘퍼니 페이스’ 촬영 때 벌어진 일화도 그녀의 소박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으로 손꼽히는 시작 부분에서 그녀가 춤을 추는데 짧은 신부복이 올라가 분홍색 팬티가 드러났다. 신부복은 수천 달러짜리였지만, 그 팬티는 98센트짜리. 이의 부조화를 눈치 챈 감독이 곧 촬영을 중단시켰고, 소품 담당자는 속옷을 구하러 달려가야 했다.
그녀는 또 퓨즈를 갈아 끼우거나 가전제품을 수리할 만큼 억척스러운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한 기자는 인터뷰 도중 녹음기가 고장 나자 그녀가 즉석에서 고쳐 주기도 했다고 전한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물건에 번호를 붙여 목록을 만들 정도로 꼼꼼했다. 그녀가 어디에 가든지 번호를 적어 보내면 도착할 즈음 가구들이 미리 배치될 정도였다.
그녀에겐 두 명의 전(前) 남편과 두 명의 친구 등 네 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녀는 배우인 멜 퍼러와 처음 결혼했고 그와 이혼한 뒤 아홉 살 어린 의사 안드레아 도티와 재혼했다. 도티와의 결혼생활에서 그녀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등 ‘보통 여자’의 삶을 살아가려 했으나 순탄치 않았다.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 지방시는 그녀와 친구 이상의 관계를 유지했고, 두 번째 이혼 뒤 만난 로버트 월더스는 마지막까지 그녀의 곁을 지켜 주었다.
그녀는 말년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평생 피하려고만 했던 기자들 앞에 스스로 나서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이며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라고 말했다. 이 말은 여러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1993년 1월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그를 조문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새 천사를 갖게 됐다.”
원제는 Audrey:her real story(1988)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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