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48>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5월 3일 18시 50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항우가 대군을 이끌고 구강으로 쳐들어간 것도 아닌데 너무 걱정할 것 없소. 먼저 토끼사냥부터 한 뒤에 호랑이를 잡아도 늦지 않을 것이오. 구강으로 돌아가 용저와 항백을 사로잡은 뒤에 돌아와 항우를 잡을 터이니 사자께서는 구경만 하시오.”

경포는 그렇게 큰소리까지 치며 군사를 구강으로 돌렸다. 망산과 탕산 사이의 남쪽 출구를 느슨하게 에워싸고 있던 환초가 모르는 척 길을 틔워주자 경포가 이끄는 3만 군사는 급히 구강으로 되돌아갔다. 저마다 그 땅에 남겨두고 온 부모처자 걱정에 걸음을 빨리하니 탕현을 떠난 지 이틀도 안돼 대택향(大澤鄕) 남쪽 회수(淮水)가에 이를 수 있었다.

구강성이 멀지 않다는 것에 더욱 다급해져 강을 건너는 군사들을 재촉하고 있는 경포에게 부장 하나가 슬며시 일깨워 주었다.

“이미 적의 대군이 구강 땅으로 들어왔다면, 틀림없이 우리가 물을 건널 때를 노릴 것입니다. 회수 남쪽에 군사를 감추고 기다리다 우리 대군이 반쯤 물을 건넜을 때 들이치면 이미 물을 건넌 군사들은 아직 진세를 정비하지 못했고, 한참 물을 건너고 있는 군사들은 급히 물을 건너도 상하(上下)와 항오(行伍)가 흐트러져 있어 제대로 싸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크고 작은 싸움으로 늙은 경포도 퍼뜩 정신이 들었다. 먼저 물을 건넌 부대는 서둘러 녹각(鹿角)과 목책(木柵)을 세워 진채를 짜게 하고, 뒤따라 물을 건너는 부대도 언제든 싸움에 나설 수 있게 대오를 정비하게 했다. 하지만 경포의 대군이 물을 다 건너도록 초나라 군사는 그림자도 얼씬 않았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그렇다면 초나라 군사들은 우리를 등 뒤에 두고 서쪽으로 몰려가 우리 도읍인 구강성(九江城=壽春)을 에워싸기라도 하였다는 것이냐?”

회수를 건너 군사를 정비한 경포가 갑자기 다급해진 어조로 그렇게 물었다. 부장(部將)들이 인근 백성들을 찾아 물어보니 용저와 항성의 군사들은 벌써 이틀 전에 그곳을 지나갔다고 알려주었다. 놀란 경포가 다시 군사들을 급하게 몰아댔다. 그러나 실은 그게 용저와 항성이 노린 점이었다.

잠시 쉴 틈도 주지 않고 군사를 휘몰아 허둥지둥 구강성을 향해 달려가던 경포가 한군데 숲 사이로 난 길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함성과 함께 초나라 대군이 숲 속에서 달려 나왔다. 경포가 놀라 살펴보니 대장기를 세우고 앞서 나와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용저였다.

“구강왕은 어찌하여 우리 대왕을 저버리고 장돌뱅이 유방에게 무릎을 꿇으셨소? 우리 대왕께서는 아직도 구강왕의 용맹을 잊지 못해 높은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시니 이제라도 넓고 떳떳한 길로 돌아가시는 게 어떻소?”

용저가 말위에서 제법 군례까지 올린 뒤에 그렇게 달래듯 말했다. 경포는 그런 용저에게 더욱 화가 나 목소리를 높였다.

“한 때의 세력에 밀려 잠시 항우에게 머리 숙인 적은 있으나 그게 어찌 과인의 진심이었겠느냐? 게다가 항우는 무도하게 의제(義帝)를 죽이고도 그 죄를 오히려 과인에게 떠넘겼으니 더욱 용서할 수 없었느니라. 그런데 너는 한낱 종놈에 지나지 않으면서 이 무슨 헛소리냐?”

그러자 용저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 늙은 도적놈이 주는 술을 마다하고 기어이 벌주를 마시겠다는 것이냐?”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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