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49>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5월 4일 18시 46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오냐. 정녕 네놈이 과인에게 벌주를 마시게 할 재주가 있는가 보자!”

경포가 그러면서 큰 칼을 뽑아들었다. 그런 경포에게는 도둑 떼의 우두머리로 오랫동안 강한 적과 싸우면서 기른 조심성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왕인 경포가 그렇게 앞뒤 없이 나서자 구강의 장졸들도 명을 기다리지 않고 다투어 앞으로 내달았다.

용저도 움츠러듦이 없이 군사를 휘몰아 맞서 곧 초나라 군사와 구강군(九江軍) 사이에 한바탕 혼전이 벌어졌다. 경포가 거느린 군사는 머릿수도 용저의 군사보다 많은데다 제 땅에서 싸우는 터라 기세가 높았다. 일시 싸움은 구강군에 유리하게 기우는 것 같았다.

“초나라 군사들은 어서 항복하여 목숨을 빌어라! 그렇지 않으면 갑옷 한 조각 무사하게 건져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경포가 그렇게 기세를 올리고 있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함성과 함께 한 갈래 초나라 군사가 나타났다. 깃발을 보니 항성이 이끄는 군사들이었다. 항성은 진작부터 용저와 짜고 가까운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싸움이 불붙기를 기다려 갑자기 경포의 등 뒤로 치고 들었다.

별 탈 없이 회수(淮水)를 건너게 되면서 경계심이 풀어져 있던 경포는 잠시 잊고 있었던 항성이 그렇게 나타나자 몹시 놀랐다. 그때까지 용저를 얕보고 있던 만큼이나 두려움에 빠져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놀라고 겁먹기는 구강군도 마찬가지였다. 항성이 새로 군사를 이끌고 왔다고는 하지만 용저의 군사와 합쳐도 자기들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몇 배의 적군에 포위된 듯 싸워보지도 않고 허둥댔다.

“겁낼 것 없다. 초군(楚軍)은 적은 군사를 갈라 눈속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 합쳐 보았자 우리보다 많지 않으니 모두 힘을 다해 싸워 물리치라!”

겨우 마음을 가다듬은 경포가 그렇게 소리소리 장졸들을 일깨우고 북돋웠으나 별로 소용이 없었다. 앞뒤로 몰린 구강군은 한 식경도 안돼 창칼을 거꾸로 잡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경포와 그의 장수들이 달아나는 군사들을 베어가며 버텨보려 했으나,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되돌리기에는 늦어 있었다. 한 싸움을 크게 지고 30리나 달아나서야 겨우 대오를 수습할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냐?”

한숨을 돌린 경포가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곳 지리를 잘 아는 장수 하나가 대답했다.

“음릉(陰陵) 서쪽입니다.”

“그렇다면 어서 구강성으로 돌아가자. 샛길을 찾아 밤낮없이 달리면 용저나 항성보다 먼저 들어갈 수가 있다. 도읍인 구강성에만 들면 두려울 게 무엇이랴!”

경포가 그렇게 말하며 군사를 휘몰아 구강성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경포가 하루 밤 하루 낮을 달려 구강성에 이르니 문루(門樓)에는 이미 초나라 깃발이 높이 걸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성가퀴에 빽빽이 올라서서 화살을 쏘아대는 것도 모두 초나라 군사들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어떻게 하여 초나라 군사들이 벌써 도성을 점령하였느냐?”

경포가 놀라 물었다. 다시 사람을 풀어 성 안팎 사정을 알아본 장수가 한참 만에 돌아와서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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