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음악 기행]체코 프라하

  • 입력 2005년 5월 5일 17시 01분


프라하 서쪽 시가지 전경. 블타바 강 건너 언덕 정상에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성당이 보이고 강 위의 카렐 다리 위로 사람들이 여유있게 걸으며 고도의 경치를 즐기고 있다. 사진 정태남 씨
프라하 서쪽 시가지 전경. 블타바 강 건너 언덕 정상에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성당이 보이고 강 위의 카렐 다리 위로 사람들이 여유있게 걸으며 고도의 경치를 즐기고 있다. 사진 정태남 씨
“우리를 동유럽 사람이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중부유럽 사람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거니는 유서 깊은 카렐 다리에서 만난 한 체코 여대생의 말이다. 체코는 언어적으로는 슬라브어권에 속하지만, 중부유럽 독일어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여느 동유럽 국가들과 다른 점이 많다.

카렐 다리 아래로 블타바 강이 흐른다. 독일식 이름은 몰다우. 남부 보헤미아 숲에서 나오는 강줄기에 서부 보헤미아 숲에서 나오는 지류가 합류해 프라하 시가지를 지나 독일의 엘베 강으로 흘러간다.

블타바 강 건너편 언덕 위 마법의 성처럼 솟은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성당은 수호신처럼 프라하 시가지를 지켜본다. ‘성(城)’을 집필하던 말년의 프란츠 카프카도 위에서 엄습해 내려오는 듯한 이 광경을 블타바 강변에서 매일 마주쳤으리라.

16세기 한때 유럽의 중심지였던 체코는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에 놓였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에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그 뒤 나치 독일의 점령, 공산체제,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 혁명’ 등을 거쳐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됐다. 이러한 격동기를 거쳤음에도 프라하는 다행히 옛 시가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 체코 근대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

19세기에도 체코는 정치적인 격동기를 겪었다. 특히 1848년 프랑스 2월혁명은 유럽에서 강대국의 지배를 받던 국민들을 자극했고, 프라하에서도 학생과 노동자들이 구심점이 되어 오스트리아 정부군에 맞섰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패배. 이 투쟁에는 젊은 음악가 스메타나도 참가했다.

오스트리아의 무자비한 탄압을 겪은 스메타나는 자신이 체코인임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체코 음악을 근대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는 중부유럽 음악에 뿌리를 두고 체코의 역사, 영웅담, 전설, 민속을 첨가하거나 체코의 풍경을 표제로 하는 등 체코 음악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그가 이 일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럽 음악계의 황제라고 할 수 있는 리스트가 능력을 인정하는 한편 정신적 후원자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리스트는 스메타나에 대해 “순수한 체코의 정신을 타고난 작곡가이며 신의 은총을 받은 예술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스메타나보다 17세 연하인 드보르자크도 스메타나가 다져놓은 토양이 없었다면 체코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 불후의 명작 ‘나의 조국’

스메타나의 대표작은 오페라 ‘팔려간 신부’,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과 현악 4중주 ‘나의 삶으로부터’ 등이다. ‘나의 삶으로부터’는 ‘음악으로 쓴 자서전’이다. 스메타나는 스웨덴에서 객원지휘자로 지낸 몇 년간을 제외하면 끝없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 살다 갔다. 젊었을 때는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웠고, 사회적 기반을 갖춘 뒤에는 네 명의 딸 중 셋이 죽는가 하면, 첫 아내도 병으로 잃는 등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그것도 부족한지 음악가에게는 재앙일 수밖에 없는 청력 이상이 생겼다. 베토벤에게 닥쳐왔던 시련이 스메타나에게도 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에 맞서 창작혼을 불살랐다. 음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작곡하기 시작한 것이 6개의 곡으로 이뤄진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이다. 이 교향시의 첫 번째 곡 ‘비셰흐라드’와 두 번째 곡 ‘블타바 강(몰다우 강)’은 1874년에 작곡했으나, 전 곡이 완성된 것은 귀머거리가 된 뒤인 1879년이었다.

‘나의 조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블타바’, 즉 ‘몰다우’다. 서로 다른 두 곳에서 흘러나온 뒤 합류해 프라하를 지나는 블타바 강처럼, 이 곡에서는 내면에 드리워진 어둠과 슬픔이라는 내적인 흐름과 이를 극복한 승화한 우아함이라는 외적인 흐름이 어우러지고 있다.

청각 장애에 정신착란증까지 앓게 된 스메타나는 1884년 5월 12일 60세를 일기로 프라하의 정신병동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체코 국민들의 애도 속에 블타바 강변 비셰흐라드 묘지에 안장됐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신의 은총이 내린 듯 5월의 봄 향기가 블타바 강변에 퍼질 때였다.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프라하 시가지를 관통해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 강. 독일식 표현은 몰다우 강이다.

▼‘스메타나 국제 음악제’ 매년 5월 열려▼

5월이 되면 프라하에는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 스메타나의 서거일인 12일부터 ‘프라하의 봄’이라는 명칭의 국제음악제가 약 3주일 동안 열리기 때문이다. 이 음악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부터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음악당인 스메타나 홀에서 매년 개최되는데 올해 제60회를 맞았다. 이 음악제는 전통적으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으로 시작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환희에 부쳐’로 끝맺는다. 프라하는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이어서 이 음악제 입장권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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