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이름은 캐시(제니퍼 코넬리). 8개월 전 남편에게서 버림받았다. 알코올 중독에서 어렵사리 벗어나 청소부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전 남편이 사업을 하며 체납한 세금을 대신 내라는 통지서가 배달된다. 한번도 사업을 해 본 적이 없는 그녀는 “부당하다”며 이를 애써 무시한다. 결국 단돈 500달러(약 50만 원)를 체납했다는 이유로 그녀의 유일한 재산인 집은 법원에 의해 경매로 넘어간다. 집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30여 년간 뼈 빠지게 일해 마련한 것. 떠돌이가 된 캐시는 모텔을 전전하다 신용카드마저 사용 정지되자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잔다.
남자. 베라니 대령(벤 킹슬리). 고국 이란에서 민중을 억압하며 막강 권력을 휘두른 비밀경찰 출신. 이란에서 혁명이 나자 그는 미국으로 도망하듯 망명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그는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편의점 점원으로 일한다. 어느 날 그는 경매로 나온 바닷가 저택을 전 재산 4만 달러(약 4000만 원)를 쏟아 부어 산다. 대령은 바다 전망이 잘 보이도록 집을 개조해 구입가의 4배인 17만4000달러(약 1억7400만 원)에 다시 내놓는다.
캐시는 대령에게 “구입한 값을 줄 테니 집을 되돌려 달라”고 애원하고, 대령은 “시세(구입가의 4배)를 전부 받지 못하면 내줄 수 없다”고 버틴다. 요구가 거절되자 캐시는 집 앞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집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
4명의 ‘시민 배심원’이 판결했다. 그들은 지혜로운 절충안을 함께 제시했다.
①김경희(36·여·비뇨기과 전문의)=대령 소유다. 정당한 방법으로 집을 획득했다. 대령은 미국 주류사회로의 편입을 갈망하는 입장. 캐시는 힘없고 소외된 여성이지만 기실 백인 주류사회의 일원. 두 사람의 지위는 애당초 같지 않다. 캐시는 경매 무효소송을 내 소송에서 이김으로써 집을 되찾고, 대령은 법원 경매처에서 낙찰금을 되돌려 받는 게 이상적일 듯.
②박은영(39·여·부산진여중 음악교사)=대령 소유가 마땅. 하지만 여자 사정이 절박하니, 대령이 여자에게 집의 일부(방 하나)를 무상으로 빌려주었으면 한다. ‘옥탑방’식으로 집을 개조해 출입문을 따로 냄으로써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며 독립적으로 살도록 한다. 대령은 집을 소유해서 좋고 캐시는 아버지가 물려준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어 좋은 ‘윈윈전략’.
③윤용강(26·남·한국외국어대 행정학과 4년)=대령 소유. 법원 통지서를 경시한 여자 잘못이다. 하지만 당분간 여자에게 방 하나를 내줘 함께 사는 게 지혜로운 선택일 듯. 사정이 절박한 여자가 집 근처에서 자살할 경우 흉흉한 소문이 돌아 집값이 금세 떨어질 것이기 때문. 영어가 서툰 대령의 부인(이란인)도 캐시를 통해 영어를 공짜로 배울 수 있어 일석이조.
④이태영(33·여·주부)=대령의 집이 분명. 대령이 쏟아 부은 노력이 무시돼선 안 된다. 구입가의 4배가 합당한 가격이라면, 대령은 캐시가 이 돈을 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캐시에게 팔도록 한다. 캐시도 그만한 가격은 집의 소중함을 배우는 ‘수업료’로 생각해야. 이렇게 부주의한 여성은 꼭 대령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누구에겐가 집을 빼앗길 게 분명하므로.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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