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시를 읽고 나타내는 반응 중 상당수는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이 시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역시 시는 어려워’ 등이다. 즉 시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시를 구성하는 ‘시어’가 시인의 감정과 사상을 담고 있는 수많은 은유와 함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조정권 시인의 신작 ‘떠도는 몸들’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이유는 시어들이 구체적이고 명료하기 때문이다. 10년 만에 신작 시집을 펴낸 저자는 은유와 함축이 아닌 일상의 언어로 담담하게 서술하듯이 시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시를 읽으면 마치 한편의 짧은 수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시의 의미와 시인의 감정이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번 작품이 저자가 여러 도시를 유랑하며 쓴 여정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체코 프라하의 밤거리, 미국 뉴욕 소호, 스위스 취리히 슈피겔가쎄 골목, 오스트리아 빈 외각 묘지부터 한국의 서울 독립문 근처 영천시장,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공원묘지. 남양주시 사릉 숲까지 여러 장소가 시에 나온다. 그리고 이들 장소는 구조적으로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시의 의미와 연결된다.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이르는 통상로가 끝나는 곳이 독일 퓌센 마을이다. 이곳에 온 나는 한 점의 떠돌이’(떠돌았던 시간), ‘이 구시가는 아날로그다. 프라하의 겨울은 눈과 얼음의 박물관이다’(두개의 주검노래), ‘제주 신천지 조각공원이 헐리고 그 위에 호텔 어떤 모습일까’(크게 저지른 일), 취리히 슈피겔가쎄 골목 12번지… 레닌이 도망쳐 1년간 숨어 살던 곳‘(국내 망명시인) 등 읽는 이가 저자를 함께 여행하며 그의 생각을 옆에서 듣는 것 같이 느껴진다.
시집 도처에 출몰하는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볼프강 헤르만, 파울 첼란, 파가니니, 헬무트 발햐, 존 케이시, 김수용, 박정만, 정찬승 등을 시에 이입시켜 기존 예술가들의 예술세계와 시의 의미를 맞물리게 해 독자에게 시의 의미를 쉽게 이해시킨다.
또한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자취가 깃든 여행지를 순례하는 과정에서 저자 자신은 예술가의 길을 가고 싶지만 결과적으로 일상에 발목을 잡히는 모습은 예술가로서 저자의 고민을 공감하게 한다. ‘어디로 가도 지상의 오줌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시인은 스스로를 망명자로 자처한다’(국내 망명자)는 이 같은 시인의 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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