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막이 오른 ‘2005 투란도트’는 이 ‘백성들’의 상징과 역할에 주목하지 않은 이탈리아 마체라타 극장판 연출을 사용했다. 백성들은 방패를 든 무사들의 방벽에 갇혀 무대 위의 옹색한 구석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칼라프 왕자와 투란도트 공주의 행복한 결합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도 이들은 여전히 무대 한구석에 갇혀 있었다. ‘만세를 누리소서’라고 외치는 민중의 합창이 음향적 공간을 가득 채웠지만 시각적으로 무대를 압도한 것은 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의상의 무용이었다.
깊이감을 십분 활용하고 금색과 붉은 색의 장려한 색상을 강조한 무대는 아름다웠지만, ‘백성’들이 가진 역동성을 도외시함으로써 이 작품 특유의 거대한 공간 이미지가 퇴색하고 말았다.
무대에 대한 불평을 멈추고 음악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어떤 모습이 펼쳐졌을까. 카를로 팔레스키가 지휘한 우크라이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관현악부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포르테의 총주(總奏)에서는 어느 파트도 불필요한 두드러짐 없이 충실하게 귀를 채웠으며 애절한 부분에서는 한없이 감미로웠다.
그러나 성악진의 면모는 첫날인 14일 공연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조연급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남녀 주역의 목소리가 작아 조연급에 묻혀 버렸다는 점이었다. 주요 배역이 모두 등장하는 3막 1장에서는 ‘초월적 여자 영웅’인 투란도트 공주(소프라노 카터 스코트)의 소리 볼륨이 ‘비천한 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처하는 류(소프라노 다니엘라 스킬라치)의 소리보다 훨씬 작게 들리는 기이한 역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남주인공 칼라프 왕자(테너 피에로 줄리아치)의 음성 역시 조연인 핑(바리톤 마르코 카마스트라)에 비해 옹색하기 그지없었다. 두 남녀 주역에 관한 한 소프라노 조반나 카솔라, 테너 니콜라 마르티누치 등이 출연하는 다른 날 공연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제작자들이 크게 주목하지 못하는 부분이 공연의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날 공연에서 자막기에 흐르는 한글 자막은 한마디로 수준 이하의 번역이었다. ‘투란도트가 통치하는 곳’을 ‘여왕이여 통치하라’로 요령부득의 오역을 하거나, 아들이 부왕에게 반말을 쓰는 것쯤은 예사였다. 해설지에 실린 번역문은 비교적 정확했지만 불만은 남는다. 1만 원짜리 해설지에는 작곡가 푸치니에 관한 간단한 소개만 있을 뿐 오페라 ‘투란도트’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2005 투란도트’ 공연은 28일까지. 02-587-7771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