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캐릭터만 살아남은 심플한‘남극일기’

  • 입력 2005년 5월 18일 17시 57분


‘남극일기’에서 광기와 이성을 대표하며 운명적으로 충돌하는 탐험대장 최도형(송강호.왼쪽)과 대원 김민재(유지태) 사진 제공 싸이더스 픽쳐스
‘남극일기’에서 광기와 이성을 대표하며 운명적으로 충돌하는 탐험대장 최도형(송강호.왼쪽)과 대원 김민재(유지태) 사진 제공 싸이더스 픽쳐스
이 영화는 ‘모’ 아니면 ‘도’,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 최초로 남극을 다룬, 제작비 90억 원짜리 심리스릴러 ‘남극일기’(19일 개봉)는 6명의 출중한 배우와 끝없이 펼쳐지는 흰눈(뉴질랜드에서 촬영됐다)이 처음이자 끝이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다면?

눈이 결정적인 ‘약(藥)’으로 작용한 경우다. 사방이 눈인 환경에서 배우들은 “연극무대에 홀로 놓인 것 같은”(송강호) 외로운 시험대에 오른다. 게다가 영화의 줄거리는 딱 한 줄. 남극 중 해안으로부터 가장 멀다는 ‘도달 불능점’을 향해 길을 떠난 6명의 탐험대가 정복욕에 사로잡히며 하나 둘 미쳐간다는 얘기다.

심플한 배경과 심플한 이야기. 음모도 없다. 범인도 없다. 반전도 없다. 결국 싫든 좋든 등장인물 6명의 캐릭터와 그들의 연기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뜻.

탐험대장 최도형(송강호)과 막내대원 김민재(유지태)는 ‘체온 궁합’이 들어맞는 최적의 콤비다. “네가 날 말렸어야지”하고 속삭이듯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 말하는 송강호는 남극을 얼려죽일 정도로 차갑다. 탐험대장을 저지하고 나서는 유지태의 두려움에 폭발하는 큰 눈알은 남극을 녹여버릴 만큼 뜨겁다.

탐험대장 최도형에 얽힌 사연이 그가 미친 듯한 정복욕을 보이는 이유로는 부족해 보이지만, 엄밀히 말해 이 영화는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에너지는 등장인물들의 강렬한 자의식이며, 뒤틀린 욕망이기 때문이다.

다음, 영화가 ‘삼진아웃’ 된다면?

눈이 치명적인 ‘독(毒)’으로 작용한 경우다. 영화 속 이야기는 단단하고 강렬하지만 이상하게도 유기체처럼 꿈틀거리지 않는다. 이는 눈이란 거대 스케일에 이야기와 캐릭터를 올려 태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남극과 긴밀히 ‘대화’하기보다는 어떤 면에서 남극을 ‘짝사랑’해 버렸다. 6명의 탐험대는 “뭔가 알 수 없는 남극의 힘이 우리를 감싸고 있어!” “남극이 대장을 미치게 만든 거야” 하고 절망하면서 남극이라는 무한도전의 땅이 인간의 욕망 때문에 반대로 인간을 옥죄고 파멸시켜 가는 과정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다.

하지만 영화가 남극을 처음부터 ‘공포의 대상’으로 딱 규정하고 들어감으로써 정작 남극은 어떤 움직이는 캐릭터를 갖지 못하고 평평한 눈밭으로 남아버린다. 남극의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 고체화된 대사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파국의 수순은 관객에게 궁금증을 갖게 하기보다는 예견한 줄거리를 거듭 확인하는 소극적 경험을 주는 데 그친다.

임필성 감독의 장편 데뷔 작.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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