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수한의 집… 불량주부는 결국 둘 다
▽강승원=때로 TV를 꺼버리거나 다른 데로 채널을 돌리고 싶을 만큼 주인공 구수한(손창민)을 보면 ‘외모만 다르지 속마음은 완전 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딸 송이가 아팠을 때 구수한이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장면은 저도 세 살 된 아들이 아팠을 때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 공감했죠. 그런데 문득 ‘불량주부’는 과연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저는 구수한은 주부 일이 서투른 점에서, 최미나(신애라)는 직장에만 관심 있고 집안일은 팽개치는 모습에서 둘 다 ‘불량주부’라고 생각합니다.
▽권재교=최미나가 좀 더 불량하지 않나요? 그나마 구수한은 살림 좀 잘해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최미나는 젊은 티만 내는 것 같아요. 나 같은 40대 직장 여성이 봤을 때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당당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웃음)
▽김기홍=권투선수 출신인 구수한이 어쩜 그렇게 아줌마가 됐을까 의문이 들어요. 저도 집에서 살림을 하지만 구수한처럼 동네 아줌마들하고 찜질방을 다닐 정도는 아니었어요.
▽강=그건 그래요. 제 경우 저희 집 바로 옆에 장모님이 살고 계세요. 사위가 살림한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충격을 받으실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대낮에는 문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어요.
▽권=하하. 저희 남편은 집에서 살림하는 것이 당당한가 봐요. 설거지, 빨래하다가도 앞치마 두른 채 친구도 만나고 그랬습니다. 가끔 제가 ‘간 큰 남자’라고 놀릴 정도니까요.
▽김=결국 구수한이 곱창집을 차리는 것으로 드라마 결론이 났죠. 저는 구수한의 처지가 너무 부럽더라고요. 처가 근처에 살고 부인 직장도 괜찮고 심지어 본인 명의로 집도 있고….
○ 최미나의 직장… 노력해서 성공?
▽권=최미나는 입사할 때 결혼한 사실을 숨기고 면접을 봤는데 저는 그 부분이 좀 씁쓸하더군요. 제가 결혼한 아줌마라서 그런지 우리나라 기혼 여성들도 분명 당당하게 일할 권리가 있는데 굳이 결혼 여부를 따진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강=최미나는 기혼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도 회사 실장의 사랑을 독차지했죠. 그래서 일부 시청자들은 최미나의 성공에 대해 ‘실장의 개입’설을 제기합니다.
▽김=그래도 최미나는 스스로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남편을 엄청 구박하는 것이죠. 제 경우도 가끔 아내가 퇴근해서 “집에 있으면서 하루 종일 뭐 했어”라고 단순하게 한마디 던지는 것도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힐 때가 있었어요.
▽권=오히려 전 집에서 살림하는 남편이 가끔 야속할 때가 있어요. 직장 생활 하다 보면 회식이나 다른 일 때문에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 남편은 100% 흔쾌히 승낙을 한답니다. “아줌마들이 놀아봤자 그게 그거지”라고 생각하는 건지 가끔 내가 너무 매력이 없나 서운해요.
▽김=개인적으로는 드라마 ‘불량주부’가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이 슬픕니다. 시청자들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이유도 자신들의 삶과 다르기 때문이죠. 저희 같은 주부 남편들에게는 이 드라마가 곧 현실인데 그것을 희화화시킨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강=궁극적으로는 실직 가장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지 않는 그런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 |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기홍
31·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결혼 5년차. 2002년 말 4년 넘게 일하던 IT 회사가 폐업. 2003년 1월부터 2년 5개월째 집에서 가사 돌봄.
![]() |
권재교
43·여·경기 부천시 고강동
결혼 19년 차. 2003년부터 학교 급식사로 직장일 시작. 건축업에 종사했던 남편은 현재 집에서 주부 역할.
강승원
![]() |
35·서울 중랑구 신내동
결혼 4년차. 지난해 7년 째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아내 대신 6개월간 ‘주부(主夫)’ 역할. 최근 통신회사에 취직.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