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64>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5월 23일 08시 28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이제 곧 항왕의 무서운 공성(攻城)이 시작될 것이다. 모두 죽기로 싸워 성을 지켜라. 오늘 이 성을 지켜내지 못하면 내일은 없다. 성이 떨어지면 그대들이 과인을 따라 눈비 맞고 들판에 자며 세운 공은 모두 물거품이 될 뿐만 아니라, 한 목숨도 부지하지 못하고 낯선 형양 땅에 흰 뼈를 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성을 지켜낸다면 천하는 머지않아 우리 한나라의 천하가 된다.”

그와 같은 한왕의 말을 받아 장량이 차분하게 장수들에게 일러주었다.

“우리가 오늘만 버텨낼 수 있으면 적의 날카로운 기세는 차차 무디어져 끝내 우리는 이 형양성을 지켜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여기서 항왕을 붙들고 있는 사이에 대장군 한신은 조(趙) 연(燕)에 이어 제(齊)나라를 평정하고 서초(西楚)의 동북으로 밀고들 것이며, 구강왕 경포는 회남 땅을 되찾은 뒤에 서초의 염통이나 위장 같은 땅을 휩쓸어 버릴 것이다. 거기다가 위(魏)상국 팽월은 다시 대량(大梁) 땅으로 나와 초나라 군사들의 양도(糧道)를 끊어놓을 것이니, 항왕도 더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을 수가 없게 된다. 울화가 치밀어 길길이 뛰다가 마침내는 지치고 굶주린 군사를 몰고 허둥지둥 서초로 돌아갈 터인데, 그때 우리가 그 뒤를 두들기고 대장군과 구강왕과 위상국이 양쪽에서 맞받아치면, 아무리 천하의 항왕이라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두려움으로 은근히 질려있던 한나라 장수들도 조금 생기를 얻은 얼굴이 되었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항왕의 용맹과 초나라 군사들의 기세에 기죽어 있는 사졸들을 북돋고 다그쳤다. 이에 사졸들도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수성의 채비에 들어갔다.

한군은 창칼의 날을 벼리고 전포와 갑주를 챙겨 맹렬한 공성전에 대비했다. 활시위와 화살촉을 손질하여 성벽으로 다가오는 적의 날카로운 기세를 꺾어놓을 채비를 하는 한편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에 대비해서는 그 머리 위에 퍼부을 통나무와 바위덩어리를 성가퀴 곁에 가지런히 재어놓았다. 따로 성벽 위에 큰 솥을 걸고 물과 기름을 끓이는 사졸들도 있었다.

장량이 헤아린 대로 패왕 항우의 첫 번째 공격은 그날 해가 지기 전에 시작되었다. 패왕은 전군을 휘몰아 동서남북 네 성문에 불을 지르게 하고 일시에 성벽을 기어오르게 했다. 자신도 성벽에 구름사다리를 걸치고 이졸들보다 앞장서 기어올랐다.

그런 초나라 장졸들의 기세도 엄청났지만 맞서는 한군의 분투도 그 못지않게 치열했다. 다가드는 적에게는 화살 비를 퍼붓다가 끝내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면 장대로 사다리를 밀쳐냈다. 그래도 안되면 기어오르는 적병의 머리위에 통나무와 바위덩어리를 내던지고 끓는 물과 기름을 퍼부었다.

아무리 패왕의 힘과 기세가 빼어나고 한번 떨치고 일어서면 무서운 전투력을 펼쳐 보이는 초나라 군사들이지만, 한군이 그렇게 나오자 밖에서 성을 들이치는 쪽의 불리함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다. 성벽 위로 몇 명 기어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초나라 군사만 적잖이 상하고 말았다. 장졸들 틈에 섞여 구름사다리를 기어오르던 패왕도 머리 위로 쏟아지는 통나무와 바위덩어리 때문에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모두 물러나라. 전열을 가다듬은 뒤에 다시 한번 들이쳐 보자!”

마침내 패왕은 그렇게 영을 내리고 징을 울려 군사를 물리게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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