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에 다니던 학생 73명은 “미국이 1980년 5월 계엄군의 광주 투입을 묵인 내지 방조했다”고 주장하며 72시간 동안 농성을 벌이면서 미국의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이 23일로 꼭 20년이 됐다.
이 사건은 미국을 우방국가로만 인식하던 일반 국민에게 ‘반미(反美)’라는 용어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학생운동에 ‘반미 운동’과 ‘점거 농성’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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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 농성에 참여했던 73명의 학생 중 2, 3학년은 단기형이나 구류 등으로 풀려났으나 주동자급 학생 19명은 구속 기소돼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독재 타도’와 ‘미국 반대’를 외쳤던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20년이 지나 불혹(不惑)의 나이를 넘기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신정훈(42) 씨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 전남 나주시장에 당선됐고 함운경(42) 씨는 2000년 총선 때 전북 군산에서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아름다운 가게’의 이강백(42) 사무처장처럼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박춘원(41) 씨는 한국과 미국의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획득한 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땄고 고려대 삼민투 위원장이던 이정훈(42) 씨는 인기 영어교재의 저자로 출판사업을 하는 중이다.
오태헌(41) 씨는 학교를 자퇴한 뒤 요리사로 일하다 1998년 출가했다. ‘운동권 딱지’가 장애물이 될 것을 우려해 대기업이나 공무원 채용시험에 응시한 경우는 드물었다.
미국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과거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박정훈(40) 사무처장은 “광주학살에 대해 미국은 현재까지 책임 여부를 명백히 밝히지 않고 있다”며 “과거나 현재나 한미 관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미국 정부의 ‘위험인물’ 리스트에 올라 있어 미국 입국에 제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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