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이장 위기’ 도쿄都 묘지外 김옥균墓 2개 더 있다

  • 입력 2005년 5월 24일 03시 11분


일본 도쿄 아오야마 공원묘지 내 외국인묘지에 있는 김옥균의 묘비. 1904년 박영효 또는 유길준이 비문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일본 도쿄 아오야마 공원묘지 내 외국인묘지에 있는 김옥균의 묘비. 1904년 박영효 또는 유길준이 비문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일본 도쿄 아오야마(靑山) 공원묘지에 있는 구한말의 풍운아 김옥균(金玉均·1851∼1894)의 묘가 강제 이장될 위기에 몰려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김옥균의 묘는 일본에 2개, 한국에 1개가 있다. 일본에는 아오야마 묘지 외에도 김옥균이 한때 머물렀던 도쿄 진조시(眞淨寺)에도 하나 더 있다. 한국에는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묘지(충남기념물 13호)가 있다. 그러나 이 묘들은 모두 가묘다.

김옥균의 묘가 이처럼 많은 데에는 그의 죽음 후 펼쳐진 파란만장한 사연이 숨어 있다. 김옥균은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본에 망명해 10년 세월을 보내던 중 1894년 청(淸)의 최고실력자 이홍장(李鴻章)을 만나기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가 고종의 밀명을 받은 홍종우에게 암살당했다.

김옥균의 시신은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사망 보름 뒤 인천항으로 들어와 마포 양화진 나루터로 옮겨졌다. 조선 조정은 대역죄인이라는 이유로 양화진에서 김옥균의 시신을 능지처참하고 목을 효수한 뒤 병사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했다.

아오야마 무덤은 일본인들이 유해의 머리카락과 의복의 일부를 몰래 가져가 만든 가묘다.

1900년에는 아오야마 무덤에 있던 머리카락의 일부를 진조시로 옮겨 무덤을 만들었다.

아산의 묘는 1912년 당시 아산군수였던 김옥균의 양자 김영진(金英鎭)이 아오야마 무덤의 유발과 의복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시 가져와 김옥균의 부인 유 씨와 합장한 것이다.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는 “고종의 분노가 극에 달해 김옥균의 유해는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될 때까지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겨우 머리카락과 의복만으로 무덤을 만들었을 것”이라며 “세 묘 모두 진짜 묘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극작가 신봉승 씨는 “일본은 망명한 김옥균의 처분을 놓고 전전긍긍하다가 중국으로 보내놓고는 그가 죽고 나자 가묘를 2개씩이나 만들며 대대적 추모행사를 펼쳤다”면서 “이제 다시 그 묘를 강제 이장하겠다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주재 한국대사관은 지난해 12월 도쿄도에 “한국 정부가 묘지 사용료를 내겠다”며 이전 방침 철회를 요청했으며 도쿄도는 “올해 10월까지 무연고 묘소 정리절차를 밟은 뒤 그 문제는 다시 논의하자”고 답했다고 밝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