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대본이었다. ‘원 우먼 플레이(One Woman Play)’.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다리오 포가 아내인 여배우 프랑카 라메를 위해 쓰고, 연출을 했다던 1인극이다.
이후, ‘남편이 연출하고 아내가 연기하는 1인극’은 이 부부의 꿈이 됐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오랜 꿈이 이루어졌다.
배우인 아내는 연기 인생 30년 만에 처음으로 1인극에 도전하고, 연출가인 남편은 처음으로 오로지 아내만을 위한 작품을 연출한다. 1975년 연출가와 여배우로 처음 만나 ‘부부 황금 콤비’를 이룬 지 꼭 30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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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책(58·극단 미추 대표)-김성녀(55·중앙대 음악극과 교수) 부부. 이들은 윤석화 씨의 ‘위트’에 이어 ‘여배우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1인극 ‘벽 속의 요정’을 무대에 올린다.
○ 김성녀 연기 인생 30년 만에 첫 모노드라마
“극단 작품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30년 동안 정작 단 한 번도 저 친구(김성녀)만을 위한 작품은 못해 준 게 제일 미안했지. 우리나라는 모노드라마를 해야 뜨잖아….”
비슷한 연배의 다른 여배우들이 1인극으로 화려하게 이름을 날릴 때, 김성녀는 부러워할 틈도 없이 남편과 극단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마당놀이에 매달렸다. 남편이 원하는 연극을 마음껏 만들 수 있도록 내키지 않는 외부 작품도 출연하며 뒷바라지했다.
“손진책 씨는 자기가 싫은 작품은 죽어도 안 해요. 하지만 나는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까 하기 싫은 것도 했죠. 이젠 더 늦기 전에 내 작품을 갖고 싶어 무리해서라도 이번에 1인극을 하는 거예요.”
‘벽 속의 요정’은 ‘여배우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동아일보가 연극 기획자 2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보고 싶은 작품 1위’로 뽑혔다. 그러나 김 씨는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연극배우’보다는 ‘마당놀이 스타’의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에게 연극 관객을 모아야 하는 이번 1인극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힘겨워하는 아내를 도와주고 싶어서였을까?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손 대표는 “신혼여행 때도 사진 한 장 안 찍었다”고 시종 어색해하면서도 아내를 위해 사진기 앞에서 장미꽃을 바치고 손을 맞잡아 주었다. 말수 없는 그는 TV 토크쇼에도 나가기로 약속해 아내를 감동시켰다.
○ 배우, 아내 그리고 동지 김성녀
“또롱아∼”, “또롱이 아빠”.
부부가 단둘이 연습하다 보니 ‘손 대표’ ‘김성녀’라는 극단에서의 ‘공식 호칭’ 대신 집에서 쓰는 애칭이 절로 튀어나왔다. ‘또롱이’는 딸의 어릴 적 별명.
“아이고, 단둘이 하니 더 안 돼.” “긴장감이 없어서 차라리 애들(스태프) 불러놓고 하자고 했다니까요.”
푸념하듯 말했지만 부부가 단둘이 작업하는 재미는 쏠쏠한 듯했다. 두 사람이 연습하는 ‘벽 속의 요정’ 역시 가족애를 다룬 번안극. 벽 속에 요정이 산다고 믿고 자란 소녀가 어느 날 벽 속에 진짜 아버지가 숨어서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깨닫는 아버지와 딸, 아내와 남편 간의 사랑 이야기다.
평소 “좋은 아내보다는 좋은 배우가 되라”고 할 만큼 손 대표는 배우, 아내, 연극 동지 중에서 ‘배우 김성녀’를 늘 최우선에 놓았다.
하지만 이번 공연만큼은 30년간 한결같이 그의 곁을 지켜준 ‘아내 김성녀’를 위한 것이다. 인터뷰를 한 23일에도 손 대표는 학과장까지 맡아 바쁜 아내의 일정에 맞춰 아내의 학교가 있는 경기 안성시까지 ‘원정’ 연습을 갔다. 그리고 그의 가방 속에는 아내에게 줄 피로해소제가 들어 있었다.
6월 10일부터 7월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우림 청담 씨어터. 02-569-0696
안성=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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