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이기영은 1924년 ‘개벽’지 현상모집에 단편 ‘오빠의 비밀편지’로 당선된 후 1925년 카프에 가담했다. 단편소설 ‘민촌’(1926) ‘농부 정도룡’(1926) ‘서화’(1933), 장편소설 ‘고향’(1933) ‘신개지’(1938) ‘인간수업’(1941)을 발표하였다. 그는 광복 직후 월북하여 장편소설 ‘두만강’을 발표하였으며 북한에서 요직을 거치다가 1984년 사망했다.
이기영은 장편소설 ‘고향’에서 농민의 경제적 몰락 과정과 삶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했다. 작품의 배경인 원터 마을은 일제강점기 농촌의 현실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읍내에 철도가 놓이고 공장이 들어서자 농촌 공동체의 구심점이 흔들리고 농민은 대부분 토지를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한다. 물가의 급격한 상승에도 불구하고 미곡의 가격은 제자리를 맴돌아 농촌 경제는 파탄을 맞는다.
이러한 농촌의 현실 속에 새로 성장하는 농민의 계급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김희준이라는 매개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의 각성을 의도한다. 주인공은 추상적 관념적 인물이 아니라 방황과 갈등을 겪는 살아있는 인물이다. 그는 농촌 생활의 고통을 겪으면서 무능력에 좌절하기도 하고, 아내와의 애정 없는 생활에 방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마을 사람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가 야학을 열고 두레를 조직하고 농민을 계몽한다. 이에 따라 자신의 삶의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원터 마을 사람들이 김희준의 지도에 의해 힘을 합치게 되고, 소작료 인하 투쟁에도 적극 동참하게 된다.
이처럼 ‘고향’은 근대화의 와중에서 전통적 사회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그 속에서 삶의 고통을 참아내며 살아가는 농민의 생활과 의식의 성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지주를 등에 업고 농민을 착취하는 마름 안승학과 그에 의해 고통 받으면서도 저항하는 마을 사람의 대립을 기본 축으로 하여 다양한 삽화를 제시하면서 농촌의 현실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 결과 ‘고향’은 일제강점기 농민들의 삶과 그 풍속의 재현을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농촌의 현실을 전형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고향’은 계급문학운동의 대표적 성과이면서 동시에 일제강점기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봉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양승국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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