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페미니즘’, ‘민중’… 그녀가 좋아한다는 단어를 나열하다보니 어느새 인터뷰 장소인 홍대 앞 한 카페에 도착했다.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홍대 거리에 걸린 한 폭의 정물화 같았다.
“여기 있으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23세기쯤 되는 예술가들의 거리라고 할까요? 이번 음반 ‘로맨토피아’의 재킷도 홍대 앞 거리에서 경험한 것들을 표현한 것이랍니다.”
2003년 11집 ‘신비체험’ 이후 2년 만에 발매되는 이상은의 새 음반 제목 ‘로맨토피아’는 ‘로맨스’와 ‘유토피아’의 합성어다. 최근 12세 연하의 독립영화감독 지망생과 사랑에 빠진 그녀의 ‘로맨스’와 그녀가 유토피아라고 외치는 홍대 앞 거리에 대한 느낌을 담은 새 음반은 방금 찍은 한 여자의 폴라로이드 사진과도 같다.
“남자 친구에 대해 많은 분들이 물어보세요. 하지만 전 제 사랑이 상업적으로 이용될까봐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가끔 주위에서 지나친 관심을 받곤 하는데 이제 그런 것쯤은 무심히 넘길 수 있는 내공은 돼요. 저도 가수 생활 17년인데요. 하하.”
남자 친구에 대한 질문은 노련하게 피해갔지만 음반에 담긴 노래만큼은 연애 ‘티’를 팍팍 풍긴다. 3일 발매되는 12집은 사랑이 테마다. 타이틀곡 ‘돌고래자리’는 사랑을 하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가사의 보사노바풍 노래. 또 진정한 행복은 부와 명예가 아닌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는 포크곡 ‘지도에도 없는 마을’, 사랑을 한 후 달라진 자신을 노래하는 록풍의 ‘로맨티즘’ 등 그동안 ‘사랑’에 무관심했던 이상은에게는 ‘반역’에 가까운 앨범이다. 사운드 역시 가사만큼이나 로맨틱하다.
“그동안 소위 난이도 높은 음악을 해왔는데 이번 음반을 통해 ‘나도 대중과 친숙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전 앨범 만들 때보다 훨씬 더 어렵더라고요. 대중성과 음악성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답니다.”
이상은은 1990년대 중반 홀연히 일본으로 건너가 ‘리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대안을 제시했다. 1997년 발표한 7집 ‘리채’나 1999년 9집 ‘아시안 프레스크립션’, 2003년 11집 ‘신비체험’ 등은 대중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는 인정받았던 수작들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2집 음반을 발매하는 지금까지 데뷔곡 ‘담다디’는 ‘약’이자 ‘독’같은 존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여웠답니다. 100명 중 99명의 팬이 ‘담다디 이상은’으로 불러줘도 어쨌든 저를 기억해주시는 것이니까 감사한 걸요.”
이상은은 올해도 방송활동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새 음반 발매가 코앞인데도 방송 스케줄은 텅텅 비어 있다.
“제 소원은 항상 다음 음반을 내는 것이죠.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후배 가수들에게 늘 전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해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