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연구하고 논의할 ‘한국죽음학회’가 4일 창립된다. 이 학회 창립을 주도한 최준식(종교학) 이화여대 교수는 31일 “한국인들은 유달리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그만큼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민족”이라고 강조했다.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거나 ‘죽은 정승이 산 개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이런 의식의 반영물이다. 무당이 죽은 사람을 불러낼 때마다 죽음을 원한이나 억울함과 연결시키는 샤머니즘적 전통, 독자적 내세관을 갖고 있지 않은 유교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세관이 들어왔지만 그것이 ‘종교적 윤색’을 거치면서 지옥이 강조되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죽음에 대한 이 같은 강렬한 거부감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서양에서 말기 암환자의 상당수는 남은 2∼3개월의 기간 동안 평생 맺힌 것을 풀며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합니다. 한국에서 말기 암환자는 대다수가 항암제 투여를 선택하면서 혼수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여기에 전통적 효사상이 결부되면서 ‘마지막 가시는 길인데…’라며 엄청난 의료비와 장례비 부담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주어진다. 최 교수는 “장례와 관련해 한국인들이 1년에 쓰는 돈이 27조 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서구에서는 이미 30년 전부터 별도의 학회로 성립해온 죽음학회가 한국에서 뒤늦게 창립된 것도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국죽음학회는 4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포스코관 B153호에서 ‘죽음, 그 의미와 현실-한국적 맥락에서’라는 주제로 창립기념 학술대회를 갖고 정식 발족한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죽음에 대한 종교학, 의학, 인류학, 사회복지학적 연구 성과가 발표된다.
이 학회에는 최 교수를 비롯 정재현(신학) 연세대, 김성례(종교학) 서강대 교수, 정진홍(종교학) 한림대 특임 교수, 송위지 서울보건대 장례지도과 교수, 윤영호 국립암센터 삶의질연구과장 등이 참여한다.
최 교수는 이날 ‘근사(近死)체험’이라는 논쟁적 주제에 대해 발표한다. 근사체험이란 죽음의 세계를 맛보고 돌아온 체험을 말한다. 과연 그런 신비체험을 학문의 영역에서 다룰 수 있을까.
“근사체험이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세기 말 스위스 지질학자 알버트 하임(1849∼1937)이 알프스 등반 중 조난당해 근사체험을 한 등반가들에 대해 보고한 이후 수십만 건에 이릅니다. 그들의 체험은 대부분 ‘혼령의 체외 이탈→깜깜한 터널을 통과하는 터널 체험→빛과의 만남→지나온 생에 대한 반성적 회고’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또 혼수상태에서 근사체험을 통해 목격한 내용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최 교수는 “근사체험자들은 죽음을 두려움과 공포로 받아들이지 않고 평온과 축복으로 받아들였으며 ‘마지막 성장의 기회’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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