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앙동 유흥가에 도심사찰 ‘고심정사’ 문열어

  • 입력 2005년 6월 4일 03시 02분


부산 도심 속에 세워진 고심정사 앞에 선 원택 스님. 그는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몸으로 기도하는 불교를 널리 전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최재호기자
부산 도심 속에 세워진 고심정사 앞에 선 원택 스님. 그는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몸으로 기도하는 불교를 널리 전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최재호기자
부산 중구 중앙동 뒷골목 노래방과 술집들이 즐비한 곳에 6층짜리 현대식 건물인 고심정사(古心精舍)란 절이 들어섰다. 성철(1912∼1993) 전 조계종 종정의 상좌로 오랫동안 시봉했던 원택(62) 스님이 주지를 맡아 세운 ‘도심 속의 포교당’이다. 1층 안내판에서 공양간(식당), 요사채(스님 숙소), 법당, 선원 등 산사(山寺)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 명칭을 접하는 것도 도심에서 숲 속 공기를 마시는 것만큼이나 신선하다.

“세어보니 주위에 술집만 일곱 군데가 있더군요. 제가 제대로 포교하러 들어온 거죠.”

원택 스님은 앞으로 이 청정 공간이 마음의 먼지들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선(禪) 수행을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을 집중 운영하겠다고 했다.

“몸으로 기도하는 불교를 널리 전하겠습니다. 3000배는 못하더라도 108배를 생활화하도록 하겠어요. 큰스님이 생전에 ‘니는 마음이 약해 3000배를 잘 못할 끼다’고 하셨는데 결국 3000배에서 108배로 돌아갑니다. 허허.”

성철 스님

그는 25년 동안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 큰스님을 모시고 산 이력이 자신의 장점이자 한계라고 말한다. “평생 보아온 게 그것이니…한국에서도 불심(佛心)이 가장 깊다는 이곳 부산은 큰스님이 이미 원력(願力)을 세운 곳이죠. 이 대지도 그런 인연으로 얻게 된 거고요.”

고심정사가 들어선 곳은 원래 대중목욕탕이 있던 자리. 성철 큰스님이 몸이 불편해 부산으로 와 병원을 찾을 때 독실한 신자였던 주인 내외가 목욕탕 건물 3층에 20평 남짓한 공간을 주고 쉬게 했다. 2001년 주인이 이 건물과 땅을 큰스님을 기리는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에 기증하자 재단은 옛 건물을 헐고 165평의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6층(연건평 930평)의 새 건물을 지은 뒤 4월 25일 개원법회를 가졌다.

건물 내 공간도 수행 중심으로 배치됐다. 6층 선원은 참선하는 곳으로 여느 절의 선방을 연상시킨다. 단지 수행자가 스님이 아니라 재가신자들인 점이 다를 뿐이다. 5층은 예불을 올리는 법당. 아직 불상(佛像)은 모시지 않고 대신 벽에 일원상(一圓相)을 그려놓았다. 원택 스님은 “불상은 조각가 전기만 씨가 제작 중인데 2007년 부처님오신날에 모실 예정”이라며 “해인사의 본존불을 닮은 촌티 나는 고불(古佛)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2층 강당은 스크린과 음향시설을 갖춰 강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원택 스님은 “필요로 하는 신행단체가 있으면 언제든지 무료로 빌려주겠다”고 밝혔다. 4층은 요사채, 3층 공양간, 1층및 지하 1층은 주차장 등으로 사용된다. 고심정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재정문제에 일절 스님들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 원택 스님은 “도심의 사찰은 산사와 달리 신자들에게 재정관리를 맡기는 게 옳다”며 “백련암에 있을 때는 내가 시장도 보고 장돌뱅이 짓을 했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벽이나 밤에는 108배나 600배를 하려는 직장인들이, 낮에는 참선하려는 40, 50대 주부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성철 큰스님의 법력 덕분일까, 고심정사는 부산의 신자들이 마음을 닦는 도심 속 수행 도량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부산=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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