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만 보고 좋은 디자인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거나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법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은 ‘앞으로 만들(어질)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만들어진 모든 물건이 이미 디자인의 산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흔히 디자인 하면 물건의 겉모양이나 스타일을 생각한다. 하지만, 뭔가를 고안하고 계획하고 설계하고 제작하는 모든 과정, 즉 사람의 손과 머리로 무(無)에서 새로움이 창조되는 모든 과정이 다 디자인의 영역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렇게 디자인 개념을 넓히면 손에 쥐고 쓸 수 있는 제품, 도구뿐 아니라 계단 집 톨게이트 등 생활공간 구조물은 물론 심지어 식당에서 자리와 메뉴를 결정하는 일도 모두 디자인 영역이다.
이렇게 넓혀 생각하면 우리의 생활은 무엇이 달라지는가? 한마디로 일상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면? 생각이 달라진다.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은 곧 창의성이다. 아다시피 창의성은 현대 산업사회의 부가가치와 생산의 원천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디자인 책이 아니라 ‘상상력’에 관한 책이다.
이를테면, 대형 마트의 쇼핑 동선도 치밀한 상상력, 즉 디자인의 산물이다.
1400평짜리 규모의 상자에 모양과 크기가 모두 다른 5만여 종에 이르는 물품들을 배치한다고 치자. 과연 어떻게 해야 다양하게 진열할 것인가?
‘마트 주인 입장에선 단 하나의 직선 통로를 만들어야 소비자들이 모든 물건을 다 둘러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고자 하는 물건을 빠른 시간 내에 딱 집어낼 수 있는 공간이 합리적이다. 우리가 접하는 현대 대형마트는 그 두 욕망이 타협해서 만들어 낸 공간이다.’
식당에서도 우리는 디자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누가 어느 자리에 앉을 것인가? 만약, 두 커플이 있다면 남자, 여자가 나란히 앉을 것인가,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나란히 앉을 것인가? 자리의 배치는 대화의 양상에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저녁식사를 디자인하는 데서 가장 궁극적인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 눈으로는 그냥 지나치고 말 일상의 공간이나 사물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통찰력은 ‘디자인’과 그것의 ‘공학적 의미’를 생각의 중심에 두었을 때 세상을 얼마나 다르게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종이봉투에서 카트까지, 전구에서 헤드라이트까지, 종이컵에서 정수기까지는 물론, 칫솔이나 의자의 진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선 사물의 가치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디자인의 힘과 그것을 만든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다시 영향을 받는 과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단 번역서이다 보니 문장이 다소 늘어지는 게 옥에 티.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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