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 입력 2005년 6월 8일 03시 28분


―유 기자, 지난주에 음악에서의 ‘사랑과 죽음’에 대해 쓰셨더군요. 그 글을 읽으면서 저는 ‘사랑의 죽음’이라는 노래를 생각했어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졸데의 아리아죠.

“적절한 연상이네요. 같은 멜로디가 2막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정염(情炎)을 태우는 장면의 2중창으로 등장하고 3막에서는 죽은 남자를 애도하는 여인의 독창으로 나오니까요. 금요일인 6월 10일은 이 작품이 초연된 140주년 기념일이니 이 작품을 상기하기에도 딱 좋은 때로군요.”

―그런데 이 노래를 들을 때 저는 속삭이는 정도의 밀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초적인 성애(性愛) 장면을 연상하곤 해요. 잘못된 것일까요?

“하하, 연상이야 듣는 사람 나름이니 잘잘못을 따질 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의 2중창 장면을 보면 설득력 없는 얘기는 아닌 듯해요. 대사만 보아서는 어느 선까지 가는 ‘밀회’인지 알 수가 없거든요. ‘우리들 한 숨결에 섞였네, 세상은 빛을 잃고….’ 물론 무대에서야 대담한 묘사까지는 나갈 수 없겠지만.”

―혹시 해외의 오페라 극장이나 영상물에서는 전통적인 것 보다 더 ‘대담한’ 연출을 할 수도 있겠네요?

“가능하지 않을까요.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바그너가 실제로 이 노래에서 성애의 묘사를 했다면 그것은 남자주인공 ‘트리스탄’이 아닌 여주인공 ‘이졸데’의 입장에서 그려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말씀하셨듯이 3막에서 이졸데가 혼자 이 선율을 노래하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여자의 ‘사랑’은 남자와 달리 간헐적(間歇的)인 곡선을 그린다고 하죠. 쏟아지듯 밀려왔다가 잦아들고, 또 밀려들고…. 이 노래의 감정 곡선이 꼭 그와 같습니다.”

―그것까지 감안했다면, 바그너는 대단한 관찰자로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 음악이 동서고금의 음악작품 중 가장 ‘야한’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을 포함해서.”

―야하다고만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데….

“성애를 즉물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정신적인 고양(高揚)의 차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지요.”

―6월에 초연돼서가 아니라, 이 작품은 특히 초여름에 듣기 좋은 것 같습니다. 달궈진 대지가 서서히 식혀지는 초저녁에 창문을 열고 먼 곳을 바라보며 서서히 볼륨을 올리면….

“야릇한 생각이 드시나요, 가상의 독자여?”

―푸핫! 아닙니다. 그저 눈물나게 아름답습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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