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큰 가족’-330. ‘연애의 목적’-260. ‘극장전’-29. ‘녹색의자’-8. ‘활’-3.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처럼 보이는 이 숫자는 각 영화가 상영되는 전국 개봉관(스크린) 수다. 앞의 두 영화처럼 250∼300개 스크린에서 개봉돼 대규모 흥행을 노리는 ‘와이드 릴리즈’가 대세인 한국영화계에 ‘단관(單館·소수관) 개봉’의 바람이 조용히 불고 있다. 단관 개봉은 한 도시에서 한 개관 혹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적은 극장에서 개봉하지만 상대적으로 상영기간은 길게 잡아 관객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한국 영화시장에서 저예산영화에 알맞은 대안적 마케팅 전략이라는 낙관적인 측면과 기반이 불안하다는 비관적인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
▽낮은 마케팅 비용=올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인 김기덕 감독의 ‘활’은 서울 부산 대전 각 1개관에서만 개봉했다. 영화의 총제작비는 10억 원이지만 단관 개봉 덕에 마케팅 비용은 1700만 원이 전부였다. ‘극장전’은 3억 원, ‘녹색의자’는 2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썼다.
단관개봉 영화 제작비 비교 (단위:억원) | ||
이름 | 순제작비 | 마케팅비 |
한국영화 평균(2004년) | 28 | 14 |
‘활’ | 10 | 0.17 |
‘녹색의자’ | 7 | 2 |
‘극장전’ | 8.6 | 3 |
김기덕 감독은 “‘활’ 이전 11편의 영화를 만들며 혹시나 하고 수억 원의 홍보비를 들여 70여 개 스크린에서 개봉했지만 결국 큰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녹색의자’의 배급을 맡은 미로비전 김래영 팀장은 “제한된 예산에서 가장 효율적인 배급방식을 찾다 보니 적절한 개봉 규모에서 길게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입영화도 단관 개봉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이달 개봉하는 일본 이와이 온지 감독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등 4편을 서울의 시네코아 한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것도 이곳을 정거장 삼아 이와이 감독의 국내 팬을 지속적으로 끌어 모으겠다는 전략이다.
▽해외 공략과 병행한다=단관 개봉 영화들의 공통점은 일단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고 투자나 배급도 해외에 일부 의존한다는 것이다. ‘극장전’은 프랑스 영화사 MK2가 제작비 8억6000만 원 중 2억 원을 투자했고 유럽과 북미 배급을 맡기로 했다. ‘활’은 일본투자사인 해피넷이 제작비의 50%를 충당했고, 이미 해외 판매로 70만 달러(약 7억 원)를 확보했다. 비디오와 DVD 등 부가판권을 감안하면 수익도 낼 수 있다. ‘녹색의자’도 선댄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 먼저 선보여 호평을 받은 뒤 국내 개봉하는 경로를 밟았다.
김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지난해부터 미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몇 개 극장에서 6개월여 상영되면서 32만여 명을 끌어 모은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나 현재 실정에서는 ‘3주 개봉’ 조건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다. 멀티플렉스라 해도 ‘스타워즈 에피소드3’ 같은 대박 영화를 2∼4개 스크린에 걸고 다른 국내외 영화를 상영하고 나면 스크린이 다 차기 때문.
영화 전문 마케팅·홍보대행사인 ‘올댓시네마’의 채윤희 대표는 “미국 저예산 영화 ‘쏘우’가 적은 수의 극장에서 시작해 전미 흥행 1위까지 오른 것처럼 우리도 좋은 저예산 영화와 이를 꾸준히 상영하는 극장의 조화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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