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박민규(37)라는 이 작가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의 아버지는 누구쯤 되는 걸까.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 나오는 그 진지한 형이상학자 민요섭이나 확신범 조동팔? 절대 아니다. 아마 박민규의 주인공들은 민요섭의 신성모독적인 열변들을 듣다가 졸지도 모른다. 황석영의 ‘객지’에서 남포 심지를 입에 물고 들불을 지르려는 동혁이? 그것도 아니다. 박민규의 주인공들은 무슨 노조를 만들기보단 편의점 ‘알바’나 지하철 ‘푸시맨’으로 일하는 걸 속 편하게 생각하는 쪽이다.
그럼 최인호의 ‘내 마음의 풍차’에 나오는 대학생 ‘나’는? 혈통상 유사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카스테라’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렇게 영악하지 않다. 위악적이지도 않다. 한 20년 묵은 옛날 ‘소년중앙’을 뒤적거리다가 길창덕 만화를 보면서 킬킬거릴 인물이다.
박민규는 자기 주인공들을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 같다. 아버지를 알 수가 없다. 그만큼 독특하고, 기발하고, 번쩍거린다. 현실이 아니라 상상의 피조물이다.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의 절반 정도는 나이 든 피터 팬에 가깝다. 이 단편집 ‘카스테라’는 세상을 알게 된 30대의 피터 팬이 우연히 성인 나이트클럽에서 다시 만난 웬디한테 들려주는 분방한 상상화(畵)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타이틀 작품 ‘카스테라’는 “이 냉장고의 전생은 훌리건이었을 것”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축구장 난동 속에 밟혀 죽은 훌리건이 ‘열 받는 속’을 삭히려고 냉장고로 환생한 것이다. ‘나’는 툴툴거리며 돌아가는 이 냉장고에 온갖 것들을 다 집어넣는다. 처음엔 ‘걸리버 여행기’를 집어넣고, 나중에는 ‘한날한시에 점프하면 지구가 쪼개진다’는 중국인들을 2명만 빼고 다 집어넣는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①문을 열고 ②집어넣고 ③닫으면 되는 거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평론가들이 지난해 가장 좋은 단편으로 꼽은 작품이다. 작가 박민규의 밑바닥 삶에 대한 애정과 자본주의에 대한 야유가 배어 있다. 이 소설 주인공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화성인은 좋겠다”는 것이다. 태양에서 지구보다 머니까 확실히 ‘쿨’하지 않겠나. 그는 시간당 1500원짜리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3000원짜리 지하철 ‘푸시맨’ 자리를 구하자 갑자기 ‘고부가가치 산업’ 종사자가 된 것 같다. 그는 지하철 유리창에 밀착된 얼굴들을 보면서 웃는다. “이런 풍선을 봤나. 터질 듯 짓눌린 볼과 입술을, 또 납작해진 돼지코를.” 하지만 맥없이 사는 아버지와 마주쳐 그 힘없는 등을 지하철 속으로 떠미는 일을 하게 된다.
그 ‘푸시맨’이 나중에 만나게 되는 건? 놀랍게도 양복을 입은 기린이다. 글쎄, 이게 만화인가 소설인가. 단편 ‘대왕 오징어의 기습’은 주인공이 그 옛날 ‘소년중앙’에서 읽었던 산더미만 한 대왕오징어들이 실제 나타나는 이야기다. 단편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선 때수건을 든 너구리가 목욕탕에 나타난다. 이 밖에도 개복치, 펠리컨, 링고 스타,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도 이 작품집에 카메오로 나오거나 찬조 출연한다.
그래서 이들을 지면에서 다 만나고 나면? 황당하지만 신나게 웃은 뒤 여운이 아직 서려 있다. 그리고 우리 사는 현실을 언뜻 본 것 같다. 동화 세계에서 슬쩍 빠져나온 피터 팬이 들려준 현실이.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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