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일주/5월24일~29일]매일 삼겹살에 맥주도 지겨워

  • 입력 2005년 6월 15일 10시 44분



자전거를 타고 ‘105일간의 유럽 10개국 일주’에 도전한 김대남(숭실대3)·이동원(한양대3)·정원제(경기대3)군. 이들이 소식을 전해와 6일간의 얘기를 싣는다. <편집자>

*이동구간 : Soest-Barberich 이동거리 : 87km, 5월24일(화요일)

전날 저녁 아침시간에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자는데 다들 동의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다들 9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아직 유럽은 아침저녁으로 무척 춥다. 우리는 그냥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사진으로 보는… (5월24일 ~ 5월29일)

'자전거로 유럽일주' 동영상 (5월24일~29일)

오늘은 특별한 일 없이 그냥 자전거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 내에 독일 입성이 가능했지만 네덜란드의 마지막 밤에 조금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독일 전 국경 근처의 캠핑장을 찾았다.

사실 오늘은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꼈다. 비도 한 두 방울 떨어졌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변덕을 부린다. 이런 날은 그냥 아늑한 공간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자꾸 이런 약한 마음을 하면 안 될 거 같아 더욱 힘차게 패달을 밟는다. 한번 약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으로 결심이 무너지기에 생각하는 것조차도 조심해야 한다.

오늘 거치는 도시 중 가장 큰 도시인 안하임에 들려 캠핑가스를 샀다. 캠핑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유럽이지만 캠핑가스를 우리처럼 아무 슈퍼에서나 살 수 있듯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 며칠 전에 사 두었던 가스로 아슬아슬하게 써왔는데 이제 조금 마음이 편하다.

6시쯤 되어서 독일 국경 근처에 있는 캠핑장에 도착.

오늘의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다. 거기에 네덜란드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한 하이네켄 맥주 파티. 오늘저녁은 꽤나 푸짐하다. 유럽에선 삼겹살이나 맥주는 부담 없는 가격이기에 우리의 주 메뉴가 된다. 육식을 선호하는 우리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메뉴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 내일이면 독일로 넘어간다. 우리 같은 자전거 여행족에게 무척이나 좋았던 네덜란드. 아쉬움과 추억을 뒤로 하고 새로운 독일로 넘어간다.

*이동구간 : Disburg-Koln 이동거리 : 72km, 5월26일(목요일)

전날 독일 입성을 자축하는 맥주파티로 하루치 일기를 빼먹었다. 독일에 들어왔다는 것 빼고는 달리 특별한 게 없긴 하지만 반성할 일이다.

전날 라인강 근처의 캠핑장에서 유럽을 혼자 자전거로 여행하는 아저씨를 만났다. 얼핏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를 닮은 외모에 지금껏 만난 유럽 사람들과 달리 굉장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저씨다. 아침에 출발 준비를 하며 우연히 목적지를 물었는데 운 좋게도 우리와 같은 쾰른이다. 어제 길 찾느라 무척 고생한 걸 생각하고 바로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오늘 우리는 독일 현지 가이드를 얻은 셈이다.

오늘 우리의 이동은 라인강을 따라 가는 것이다. 다른 길도 있긴 하지만 복잡하고 지루한 도심을 가로지르는 것보다 강을 보며 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때마침 오늘은 예수승천일이란 휴일이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라인강 근처로 쏟아져 나왔다.

더구나 날씨가 무척이나 좋아 더 한 것 같다. 이쪽 독일지방에선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이 드물기에 해만 비추면 다들 웃통을 벗고 일광욕을 즐긴다. 우리 역시 비 오는 날보다 맑은 날이 좋긴 하지만 어제부터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쾰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쯤.

도착하기 전부터 저 멀리에 유명한 쾰른 대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씩 다가가보니 이건 정말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1200년에 짓기 시작한 이 성당은 아직도 완성이 되지 않았다. 그저 성당일 뿐인데 신앙심이 좋은 것인지 무언가를 후세에 남기기 위한 것인지 여하튼 그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다행히도 입장은 무료이기에 독일인 아저씨에게 자전거를 맡기고 내부로 들어갔다. 그 외부에 놀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내부 또한 대단하다. 오늘 예수승천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금 전까지 미사를 드렸는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 사람들 주위엔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으니 과연 제대로 미사를 드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쾰른 대성당을 보고 오늘 우리를 인도해준 독일 아저씨에게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기 위해 장을 보러 갔다. 오늘 같이 오면서 무척이나 친절히 이곳저곳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중간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널 일이 있었는데 배 값도 내 주셨다. 무척이나 친절한 아저씨지만 조금 전 쾰른 대성당을 관광하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기에 당연히 우리 것도 사올 줄 알았던 아저씨가 태연히 자기 것만 사가지고 오는 것을 보고 조금 배신감을 느낀다. 이것이 물론 유럽의 사고방식이라지만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아무튼 대체적으로 무척 고마웠던 이 아저씨에게 우리는 맛있는 스파게티를 대접하기로 했다. 재료라고 해봐야 토마토소스가 고작이지만 대접한다는 자체가 좋지 않은가. 다같이 맛있게 스파게티를 먹은 후 약간 아쉬워하는 아저씨를 위해 밥도 해주었다. 스파게티에 비해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맛있게 밥에 토마토소스를 비벼 먹는다. 이왕 이렇게 대접한 거 한국의 맛을 확실히 보여주자는데 다들 동의하고 남은 밥으로 숭늉까지 끓여 주었다. 코리안 수프라는 사실도 이야기 하며. 밥 먹을 때 보다 조금 더 표정이 어둡긴 했지만 이런 우리가 기특했는지 맛있게 먹는 척(??) 해 주었다. 고마운 아저씨.

식사 후 잔디에 앉아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물론 우리가 준비해간 독도 이야기도 잊지 않고. 물론 확실한 사실을 알고 있다거나 특별히 궁금해 하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독도에 한국 땅이라고 확실히 표시하겠다는 약속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마쳤다.

점점 여행을 하며 처음에 소원했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잦아지고 있어 무척 기쁘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이동구간 : Koln-Rheineck 이동거리 : 70km, 5월27일(금요일)

어제 무리해서 맥주를 두 병이나 먹은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어지간해선 술을 안 먹으려 하지만 독일에 들어오면서부터 맥주를 마시는 일이 하루의 일과가 될 정도다.

오늘은 Koblenz까지 가볼 계획이다. 어제 함께 이동한 독일인 알렉산더 아저씨도 함께.

소개가 늦었지만 알렉산더 아저씨는 현재 40살로 병원에서 간호사 일을 하고 있단다. 무척이나 조용하지만 가끔 하는 말이 진짜 웃긴다.

부지런히 라인 강을 따라 이동해 점심때 오늘 목표의 중간지점인 본(Bonn)에 도착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유명한 음악가 베토벤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 현재는 피아노와 여타 산업으로 독일 내에서도 무척이나 잘 사는 도시로 꼽힌단다.

베토벤의 생가도 가볼 겸 다 같이 본 시내 중심가로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3유로에 달하는 입장료 때문에 내부까지는 못 들어갔지만 더 큰 행운은 베토벤 생가 바로 옆에 있는 한국 식당을 발견한 것. 유럽 와서 처음 보는 한국 식당이었다. 7.4유로의 부페식 식당이다.

어제부터 우리가 한국음식이 그립다는 얘기를 해서인지 알렉산더 아저씨도 선뜻 같이 들어가 먹자고 한다. 오랜만에 한국음악이 나오는 가게에서 한국 음식을 먹으니 행복하다.

알렉산더 아저씨와 함께 음식을 고르며 하나씩 자세히 이름과 맛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이것저것 맛을 보더니 그 중에 불고기가 가장 맛이 있단다. 어제 숭늉까지 먹는 아저씨를 보며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잘 먹어주니 오히려 고맙다.

오랜만에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을 먹고 나니 식당을 나오기가 아쉽다.

어제부터 여기 독일은 30도가 넘는 이상기후를 보인다. 평년 기온을 훨씬 웃도는 온도라 라인강변 그늘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무더운 날씨 탓에 우리도 당초 목적지인 Koblenz까지 가지 않고 30km전 지점인 Rheineck 캠핑장으로 목적지를 수정했다.

캠핑장에 들어와 루트를 짜본 결과 아마도 내일은 알렉산더 아저씨와 아쉬운 이별을 할 것 같다. 고작 2일이었지만 그새 다들 정이 많이 든 것 같다. 저녁을 같이 먹고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같이 주소도 주고받고 준비해간 태극기에 사인도 받으며 훗날의 기약 없는 만남을 약속했다. 또 다른 새로운 경험과 만남을 위해 내일은 독일의 행정과 산업의 도시 프랑크프루트로 열심히 달려갈 계획이다.

*이동구간 : Koblenz-Bad Ems-Nassau-Diez 이동거리 : 100km, 5월28일(토요일)

유럽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날.

며칠 전부터 시작된 더위도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보다 오늘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산을 만났다. 솔직히 지금껏 유럽의 평지만 달려 약간은 자전거 타기에 심심함을 느꼈던 터라 은근히 오늘 만나게 될 산을 기다렸지만 막상 산을 오르고 나니 정말 자전거로 산을 오르기란... 힘든 것이 상상을 초월한다.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그저 힘들다는 말 밖에는...

과연 앞으로 스위스 알프스를 자전거로 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점심때 3일간 같이 이동한 알렉산더 아저씨와 감자튀김과 씨리얼로 마지막 식사를 같이 했다. 그간 우리에게 훌륭한 현지가이드였는데 예정된 이별이었지만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아쉬움이 크다. 준비해간 태극마크 책갈피를 선물로 주고 서로 좋은 여행을 기원하며 각자의 갈 길을 간다.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은 직선거리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갈 수 있는 길이 꼬불꼬불한 산길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무척 힘들다. 유럽에 오기 전 강원도로 갔던 전지훈련을 생각하며 산길을 오르지만 뜨거운 태양과 바람까지 부니 여간 악조건이 아닐 수 없다.

혼자서 오르막을 오르면 그냥 쉬엄쉬엄 천천히 올라가겠지만 앞서가는 친구를 보며 그냥 주저앉기는 싫다. 괜히 혼자 낙오하는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으니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다리근육에 경련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를 악물고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오늘 올라간 산은 그래도 비교적 정직한 산이다. 올라갈 때의 고통과 노력을 길게 뻗어있는 내리막으로 보상을 해주니 억울하지는 않다. 자전거를 타며 많이 느끼는 것이지만 하나의 시련을 이겨내면 달콤한 시간이 허락된다는 사실에 많은 것을 배운다.

내일은 유럽 와서 세 번째로 맞이하는 일요일.

그냥 달콤한 휴일의 여유를 만끽하고 싶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에 내일도 열심히 패달을 밟을 것이다.

*이동구간 : Limbrug-Konigstein 이동거리 : 70km, 5월29일(일요일)

유럽에 와서 세 번째 맞이하는 일요일.

어제 처음으로 날씨가 더워 텐트에서 나와 그냥 매트리스와 침낭만 덮고 밖에서 잠자기를 시도했다. 밖에서 자니 밤하늘의 별도 보이고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하지만 아직 새벽엔 조금 추운 편이라 다시 텐트로 들어간다.

날씨가 무척 더워 어제 빨아 덜 마른 옷을 그냥 입고 출발. 오히려 시원하다.

프랑크푸르트까지 2일을 예상했었는데 생각 못했던 산이 많아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한참을 이동하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겼다. 원제의 자전거 바퀴에 펑크가 났다. 장비가 있긴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보니 조금 당황스럽다. 이런 일이야 앞으로 남은 여행에서 부지기수로 많겠지만 막상 펑크가 나면 다른 사람보다도 당사자가 제일 짜증스럽다. 동행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자전거에 한번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이상 연쇄적으로 문제가 생기다 보니 걱정도 된다.

대충 타이어패치로 위기는 넘겼지만 큰 도시에 들려 꼭 손을 봐야 할 것 같다.

오늘도 역시 가는 길에 산이 무척 많다. 다들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무거운 짐을 실은 자전거로 산을 오르면 마치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다. 정상은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보일 듯 보일 듯 안 보인다. 흐르는 땀 때문에 조금이라도 살을 덜 태우기 위해 바른 썬 크림은 아무 소용이 없다. 어제 빨아 입은 옷도 벌써 땀으로 흥건하다.

원래 오늘 4~5시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유스호스텔을 잡고 시내관광을 하려고 했는데 5시가 넘었는데도 30km나 남았다. 그냥 무리해서 가자니 무척 힘들기도 하고 또 여기서 오늘일정을 마치기에도 이동거리가 너무 적다. 솔직히 이런 여행에서 리더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한데 허물없는 친구사이다 보니 딱히 리더의 역할을 정하기도 어렵다. 차라리 군대식으로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는데 친구 사이의 의견조율이 무척이나 힘들다.

다행이라고 하기엔 원제에게 무척 미안하지만 때마침 원제 자전거에 다시 펑크가 난다. 오전에 손질 한 곳이 다시 말썽이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캠핑장에서 머물기로 결정.

프랑크푸르트에 아마도 내일 오전쯤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때로는 부담 없이 모든 것을 상황에 맡기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지 계획대로 보고 싶은 것을 모두 볼 수 있는 우리에겐 남의 얘기다. 지금 느끼는 이런 아쉬운 부분들은 아마도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나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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